국채 수익률이 사상 최고치를 오르내리며 외부로부터의 자금 차입이 사실당 중단돼 수일내 구제금융을 신청하거나 디폴트(Default)를 선언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10일 외신에 따르면 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국채 10년물의 수익률은 장중 7.4%까지 치솟아 마지노선인 7%를 넘어 섰다. 하루새 무려 0.82%포인트 뛰어 오른 것으로, 이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이탈리아 국채를 마구 버리고 있다는 의미다.
이날 이탈리아 10년물 국채가 '똥값'이 된 것은 직접적으로는 유럽의 대표적인 채권 청산 기관인 LCH 클리어넷(Clearnet)이 이탈리아 국채의 위험 담보금을 상향 조정한 데 따른 것이다.
이날 상승세로 출발한 이탈리아는 물론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 증권시장들도 일제히 급락세로 돌아섰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임이라는 카드가 한나절도 못돼 효과가 급속히 소진된 것이다.
이날 글로벌 시장의 반응은 지난 8일 사퇴의사를 밝힌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행보를 믿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다음주 유럽연합(EU)가 요구한 경제개혁안의 의회 승인을 마치는 대로 사임하겠다고 밝혔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시장은 이탈리아가 그리스, 포르투갈 등의 전철을 밟아 곧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인‘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그리스 위기가 유로존 국경에서 벌어진 작은 충돌이라면 이탈리아 사태는 유로존 중심부가 공격당한 것과 같다”면서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즉각 사퇴했어야 했다"고 비판했다.
이날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도 “이탈리아의 심각한 상황에 비춰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의 표명은 너무 느슨한 반응”이라고 평가했다. '세계의 경제 대통령' 가이트너가 외국 정상의 거취에 대해 이처럼 직설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이탈리아 사태가 그만큼 파괴적이라는 방증이다.
이탈리아 경제가 망조가 들어 가고 있는 것은 막대한 정부부채와 성장률 정체라는 고질병 때문이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총리의 퇴진이 아니라 강력한 재정감축안의 이행이라는 한층 근본적인 치유책이 필요하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이탈리아는 약 1조9000억 유로(약 2조6000억 달러)에 달하는 정부부채, 연 1% 미만의 만성적인 성장률 정체, 높은 실업률이라는 고질병을 안고 있다. 또 올 연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300억 유로 안팎의 국채, 내년에 만기 도래하는 약 3000억 유로를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탈리아 국가 부채는 초당 1000유로(155만원)씩 불어나고 있다”면서 "이런 속도라면 빚을 다 갚기도 전에 외부에서 시급히 자금 수혈을 받아 땜빵부터 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지금처럼 국채 금리가 7% 이상의 고공행진을 계속하게 되면 이탈리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곧 며칠 안에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될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도 국채 금리가 7%를 넘기 시작한 시점부터 각각 17일, 22일, 91일 만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4위의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의 붕괴는 곧바로 인접국인 프랑스와 독일로 불똥이 튕길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경우 그간 문제가 되었던 포르투갈이나 그리스와는 달리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글로벌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게 될 수 있다는 게 정책 당국자들의 우려다.
그러나 최근 유로존 국가들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의 가용재원을 레버리지를 통해 4400억 유로에서 1조유로 규모로 늘리기로 합의했지만 아직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다.
설사 EFSF의 가용재원이 1조 유로로 늘어난다 해도 이탈리아가 디폴트(채무불이행)로 가는 것은 막는 데 필요한 자금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더구나 이 돈의 상당 부분은 그리스 구제에 쓰일 것으로 예정돼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그리스와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에 투입된 구제금융 비용을 기준으로 할 때 이탈리아에는 총 1조4000억 유로에 달하는 막대한 구제금융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EFSF의 가용재원을 모두 탈탈 떨어도 모자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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