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정말 짐승의 꼴이라도 뼈만 앙상한 모습이라도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줘서...내 아내와 두 딸과 제가 얼싸안고 부둥켜 안고 실컷 울었으면 좋겠습니다.”오씨는 이날 북한에 억류돼 있는 부인 신씨와 두 딸 혜원,규원 ‘구출 운동’을 위해 미 의회를 찾았다. 미 의회에서 개막된 북한자유이주민 인권을 위한 국제의원연맹(IPCNKR) 8차 총회에서의 증언을 위해서였다.
이날 오씨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어린 두 딸과 부인을 두고 홀로 북한을 탈출한 회한이 가득해 보였다. 한국, 미국, 일본, 캐나다, 카메룬, 폴란드 등 6개국에서 참석한 10여명의 의원들의 표정도 숙연해졌다.
“2005년까지는 저의 가족이 북한에 살아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 저의 딸이 살아있다고 믿어주시겠죠. 나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믿어주시기 바랍니다.”행여 바람 앞에 등불이라도 꺼질세라 ‘통영의 딸’ 구출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오씨의 목소리는 애절함을 넘어섰다.
1985년 방북 이전 독일에서 찍었던 어린 두 딸의 바이올린 연주 사진을 든 오씨의 목이 메었다.
“정말 연약하고 고립무원의 그 가족의 그 고초를, 흘리는 눈물을...아마 뼈밖에 안 남았고 앙상한 몸으로 흘리는 눈물을 내 손으로 닦아주고 싶습니다.”오씨의 증언에 앞서 오씨 가족의 얘기를 담은 10여분짜리 다큐영화가 행사장에서 상영됐다. 회의장 화면에는 회한에 찬 오씨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내가 바보였죠. 모든게 잘못이었죠. 이미 너무 늦었어요.” 오씨는 연합뉴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18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미국 방미기간에 ‘통영의 딸’ 구출운동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관심을 기대했다.
그는 방미 활동 목표에 대해 “구체적으로 가족들의 생사확인과 그것을 넘어서서 가족 송환 내지 가족이 재결합해 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 이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오씨는 16일에는 미 국무부 인권담당자들과 만나고, 18일에는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해 ‘통영의 딸’ 구출운동을 위해 16만여명이 참여한 온오프라인 서명 청원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또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앞에서 가족들의 조기 송환을 위한 집회도 가질 계획이다.
IPCNKR의 올해 총회에서는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고발하고 북한 내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추적하는 한편 북한의 인권개선을 위한 방향 모색 등이 집중 논의됐다.
국제의원연맹은 전세계 61개국의 국회의원 200여명이 탈북자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 2003년 결성한 단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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