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찬 중국 금융연구소 소장
김정일의 부고가 보도된 12월 20일 중국에선 또 하나의 뉴스에 이목이 집중됐다. 축구 승부조작을 둘러싼 재판이 2년간 조사기간을 거쳐 개정됐다는 보도였다. 재판에 나온 사람은 중국축구협회 전 부주석, 同 협회의 전심판위원회 주임, 전 심판, 20개 구단 간부와 선수들이 ‘비국가공무원 수뢰죄’ 혐의로 공판을 받았다.
중국 프로축구리그는 1994년 발족했다. 현재 1부 '중국 슈퍼리그' 16팀과 2부 '중국 갑(甲)급' 15팀으로 구성돼 있다. 축구복권도 판매된다. 중국 축구는 이전엔 결코 약하지 않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경제성장과는 거꾸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는 20년이 채 안된 중국축구를 오명처럼 따라다니는 수식어인 ‘부패’, ‘승부조작', ‘불공정한 심판' 때문이다. 열광적이었던 '치우미(球迷: 축구팬)'조차, “최근의 중국 축구는 완전히 재미없다. 보는 것은 오로지 해외리그다”라고 말할 정도다. 실제로 5만 명을 수용하는 경기장 입장객 수는 1만5000명으로 줄었다. 팬들이 떠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유소년이 본받아야 할 모델이 없다 보니, 유소년 축구가 각 도시에서 대부분 사라진 것이다. 10년 뒤 중국을 담당할 축구선수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심지어 대표팀 선수들은 선발된 것을 영예로 느끼지 않는다. 이로 인해 팀워크가 부족하고, 경기 중에 동료들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고, 운동 전후에도 단독 행동을 한다. 주요한 장면에서 동료를 격려하거나 팀을 이끌 리더도 없어졌다. 대부분 개인플레이만 하다 보니 팀 플레이도 사라졌다.
중국 축구가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구단 오너가 부동산기업인으로 최근의 부동산 버블붕괴로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는 점이다. 중국 축구가 '부동산축구'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도 ‘중국 슈퍼리그’ 16팀 중에 13팀이 부동산기업 또는 부동산이 주 영업 수익인 기업을 거느린 그룹의 오너이기 때문이다(2011년6월 시점). '광저우 에버그란데'의 쉬자인(许家印) 구단주는 광저우 헝다그룹(広州恒大)의 회장으로 매출액이 14조원 이상인 중국 최대 부동산개발업체다. 자금력이 풍부하다 보니, 박지성에게는 맨유에서 받는 연봉의 두 배인 820만 유로(한화 약 130억 원)를, 맨유 측에는 원하는 만큼의 이적료를 지급하겠다는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원래 부동산기업이 축구클럽을 소유하는 것은 '정치적 계획'때문이라고들 한다. 지방정부에 귀여움을 많이 받을수록 그만큼 정치적 혜택이 돌아오기 때문에 부동산개발업자는 축구 구단이야말로 최선의 정치적 수단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버블 붕괴로 부채 위기에 빠진 모기업이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구단을 포기하거나, 파트너를 모집해 공동 경영을 준비하는 구단이 늘고 있다. 결국 이는 축구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난무한 승부조작, 오너기업의 경영부진 등의 문제로 현재 중국축구는 괴멸상태에 가깝다. 비록 난제는 산적해 있지만 앞으로 중국축구에는 대 변화가 예상된다. 왜냐하면 축구재건을 향한 중국정부의 열정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중국 축구를 책임지고 있는 국가체육총국 차이젠화(蔡振華) 부국장을 중심으로 정부차원에서 고위급 축구 행정기구를 신설하고 앞으로 10년에 걸쳐 중국 축구 수준을 끌어올리다는 청소년 축구 중장기발전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차기 최고지도자가 될 시진핑(習近平)이 축구에 대해 언급한 점도 놓칠 수 없다. 시진핑은 2009년 독일 방문 당시, “중국 축구 수준은 낮다”고 지적했다. 그 뒤에 중국에선 '도박타도, 승부조작 타도' 움직임이 일어났다. 열렬한 축구팬으로 알려진 시진핑은 2011년 7월 우리나라 민주당 손학규 대표로부터 박지성 사인 볼을 선물 받고, 중국 축구에 대한 세 가지 소망을 토로하기도 했다. 월드컵 본선 진출, 월드컵 개최, 월드컵 우승이 그것이다.
중국에선 “지도자의 취미가 유행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다. 1970년대 수영경기 진흥과 강화가 중국의 주요 과제가 된 것은 마오쩌둥(毛澤東)이 수영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시진핑의 남다른 축구사랑을 반영해서인지, 올해 3월부터는 2003년 이후 중단됐던 '전국축구대표대회'가 부활할 예정이다.
현재 중국축구는 팬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어 광고를 내보는 기업도 없다. 중국 내수시장에 진출하려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최악의 시기에 스폰서가 되어 축구마케팅을 활용할 경우, 중국 축구의 발전에 공헌하는 기업이 될 수 있다. 올해 중국이 내수중시로의 정책전환에 적극 나서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 기업들이 ‘난세가 기회’라는 역발상을 통해 긍정적이고 전향적으로 중국축구를 비즈니스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