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주역들, 요즘 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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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1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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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송정훈 기자) 통상교섭본부는 지난 1998년 출범했다. 한덕수 초대 통상교섭본부장 등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를 성사시키며 FTA의 물꼬를 텄다. 이를 동시 다발적 FTA로 확대한 인물이 한·미FTA 타결의 주역인 김현종·김종훈 전 본부장이다. 이들은 한미FTA 협상이 타결된 2007년 4월 노무현 정부의 집권당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개방형 통상국가를 지항하는 우리 경제의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미국과의 FTA는 꼭 필요했기 때문에 "수고가 많았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2010년 12월 자동차, 돼지고기 등 추가협상을 거쳐 작년 11월 국회 비준동의안이 처리된 지금 이들은 열린우리당에서 이름을 바꾼 민주통합당의 ‘적’이 됐다. 영웅에서 ‘옷만 갈아입은 이완용’으로 전락한 이들. 요즘 뭐하고 살까.

김현종 전 본부장은 2006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한·미 FTA 추진을 천명한 이래 1차 타결까지 책임진 인물이다. 유럽연합(EU)과 미국을 상대로 FTA를 동시에 추진하는 지렛대 전략을 쓰며 산파역을 했다. 실제 그는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도 수전 슈워브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피터 맨덜슨 EU 통상담당 집행위원 등 전 세계 고위급 통상 담당자들과 전화로 직접 대화하면서 국제적 네트워크를 백분 활용했다.

그는 작년 한미FTA 비준안 처리를 놓고 국회가 공전을 거듭할때 “한미 FTA를 반대하는 분들은 (득실을 따지기 보다) 미국을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냐”고 맞받아치기도 했다.

‘검투사’ 김종훈 전 본부장은 김 전 본부장과 함께 2006년부터 한국 협상단 수석대표를 맡으면서 한미 FTA협상을 이끌었다. 김현종 전 본부장이 총괄지휘를 했다면 김종훈 전 본부장은 야전사령관이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협상장에서 뿜어내는 강한 카리스마 때문에 ‘검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2007년 6월 양국이 협정에 공식 서명한 뒤 비준 과정에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해결사로 나섰다. 2008년 쇠고기 추가 협상 때는 “귀국하겠다”며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 극적으로 타결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한미FTA 주역들은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김현종 전 본부장은 2009년 3월부터 삼성전자 해외법무팀 사장으로 일했고 올초 사임했다. 삼성전자는 3년 임기의 상담역 자리를 제안했지만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변호사 출신이기 때문에 미국측 로펌에 갈 것이란 예상과 함께 정계 진출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종훈 전 본부장은 4월 총선 출마의사를 밝혔다. 새누리당에서 총선 출마 제안을 받고 이를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통합당 등 야권이 총·대선 공약으로 한미FTA 폐기를 전면에 세우면서 여당내에서도 ‘김종훈 공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미FTA 비준안 강행 처리 후 반대 여론이 찬성보다 높아진 상화에서 김 전 본부장의 영입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다.

이들이 이런 정치적 논란을 뚫고 정계에 진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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