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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작가 조소희씨가 빨간 실로 엮어만든 '손'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을 찍을때마다 팔을 뒤로 돌리는 작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사진=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전시장에 들어서면 그물망같은 갸날픈 양팔이 털썩 놓인채 매달려있다. 길게 늘어진 팔은 천장에 뿌리를 뻗힌채 번식하는 모습이다.
빨간 실로 짠 '손' 설치작품은 살짝 일렁이는 바람에도 흔들리는 거미줄같다.
"유학시절 돈이 없었어요. 재료를 주변에서 찾다가 실을 발견했죠. 떨어져있는 실을 보니 자기 스스로 드로잉이 생기는게 마음을 끌더군요."
'별 것 아닌 실'을 거대하게 부활시킨 설치작가 조소희씨가 소격동 갤러리선컨템포러리에서 '사(絲) 적 인상'을 열고 있다.
작가는 '얇은 뜨게질' 작품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거즈(실)로 만든 원피스', '거즈(실)로 만든 신발'등 호~ 불면 날아갈듯 부서질듯한 뜨게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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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마리 휴지 위에 타이프치기>진행형 프로젝트, 2003 |
이번 전시에는 재봉실로 만든 '손' 작품뿐만 아니라 '두루마리 휴지에 타이프를 친' 작품도 나왔다. 무심히 지나쳤던 하찮고 미미한 존재들을 살려낸 섬세한 촉수를 가진 작가의 내면을 엿볼수 있다.
습자지 화장지, 촛불등 아주 얇고 약한 존재들은 작가의 추상적 개념에 거대한 존재로 실체화됐다.
어떻게 휴지에 타이프를 쳤을까.
"연약하다고 생각해서 더욱 조심해서인지 찢어지지 않더라고요.오히려 휴지에서 강인한 탄력을 발견했어요."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그의 작품 '두루마리 휴지'같았다. 얇은 몸매를 가진 그는 타이프의 고통을 받아들인 휴지처럼 자신의 예술에 대해 똑부러진 자신감을 보였다.
2층 전시장 한 벽을 장식한 '편지'는 작가의 개념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속히 훤히 비치는 봉투속엔 만지기도 힘든 화장지위에 암호같은 글자들이 박혀있다. '이미지' '십자가' '예술' 'ㅇ" 'X'같은 글자들은 멀리서 보면 휘~날아가는 연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데 모은 편지 작품들은 언뜻보면 묘지같기도 하다.간단하고 단순한 작품들인데 '죽음'과 '덧없는 인생'이 느껴진다.
작가는 "심플해지기가 이렇게 힘들줄이야(LA VIA SIMPLE)"라는 빈센트 반 고흐의 말을 가슴에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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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전시장에 설치된 '편지'. '비과학적인 춧불의 시학' |
하나하나 실을 엮은 무한반복과 노동집약적으로 이뤄진 작품들은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이다.
"아무리 미미한 것들이라도 시간이 흘러 증식되면 어떤 공간을 채우는 존재가 되고 그것을 구성하는 미미한 존재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작가는 "예술은 끊임없이 행해가는 것"이라고 했다.
예술은 거창한 것 같지만 사실 소소한 것들과 아주 작은 것들에서 시작되고 축적되었을때 빛난다는 작가의 예술관을 보여준다.
가볍고 보잘것 없어, 있는줄도 몰랐던 것들에 대한 존재의 회로를 재설정하게 해주는 이번 전시는 설치작가 조소희의 발견이다.
구상시인의 '시와 기어'라는 시를 인용한 '예술과 기어' 작품은 작가가 예술과 씨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술이여! 이제 나에게서 너는 떠나다오. 나는 너무 오래 너에게 붙잡혔었다. ' 라는 시귀가 타이프로 쳐서 책으로 만들고 영상을 통해 읽혀지고 있다.
작가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끝까지 순수하게 탐구하는 자세로 작업하겠다"면서 "전혀 예기치 않았던 재료로 만든 작품을 이미 만들어놓았다"며 열정을 보였다.
2층 전시장 입구에 있는 사다리도 그냥 지나치면 안된다. 작가가 구상하고 있는 다음 작품 퍼포먼스 예고편이다.
1995년 동덕여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파리1대학에서 조형예술학 석사 박사를 취득한 작가는 그동안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에서 8회 개인전을 가졌다. 현재 경기대 동덕여대 백석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전시는 4월 1일까지.(02)720-5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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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집약적인 단순한 행위의 반복작업을 통해 미미한 존재들이 가진는 담론을 생성하며 '예술'에 대해 숨겨진 촉각을 자극하고 있는 설치작가 조소희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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