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왕'으로 불리는 채익종 씨는 현재 100억원대의 많은 자산을 보유한 부자다. 그는 불과 2008년까지 서울 중구청 소속 환경미화원(청소부)이었다. 더욱이 채 씨는 가난한 부모를 뒀고 그 부모는 병원비만 한달에 수백만 원이 필요한 중병에 시달렸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가 그토록 끊으려고 했던 '가난의 악순환'을 끝내 단절했고 남들이 부러워할 '부자'로 불리운다. 자산 기준 '하위 5%'에서 '상위 5%'까지 급상승하는 드라마틱한 결과 뒤에 어떠한 과정이 있었던 것일까? 29일 오후 채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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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디앤씨 채익종 대표 [사진 = 아주경제 이준혁 기자] |
◆청소부 생활을 하며 지독하게 모은 종자돈 '3000만원'
일용직 노동자, 사채 수금원, 가스 배달원, 택시 운전기사, 나이트클럽 웨이터…. 채 씨가 1992년 서울 중구청서 기능직 공무원의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거쳤던 직업 종류다.
매우 가난한 집에서 자란 채 씨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서민도 아니고 겨우 목숨만 잇던 하층민 가정"서 자랐다며 "하위 5% 이하 극빈층이었다. 비새는 집도 오르는 방세를 못내 나가야 했다. 공무원이 돼 고정적인 수입이 생겼고, 가족 생계는 겨우 안정을 찾았다"고 말했다.
당시 어머니가 하던 대포집의 단골손님 중 공무원이 있었는데 시험이 있다고 알려줬고 결국 공무원에 채용된 것이다.
그러나 나가는 돈은 줄지 않았다. 자식 셋이 커 쓰는 돈이 늘었다. 1997년에는 아버지가 혈액종양을 앓으며 예상못한 병원비도 불었다. 채 씨 연봉이 990만원인데 내야할 돈은 한 달 500만원까지 크게 늘었다. 많은 돈을 치료에 쏟아부었지만, 아버지는 2000년 세상을 떠났다.
채 씨는 "부모님께 번듯한 자식노릇은 못해도 가장으로 자식에게 끼니 걱정토록 하기는 싫었다. '더 이상 가난하게 살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돈을 악착같이 모았다"고 말했다.
그는 종자돈을 모으기 위해 중구청 구내식당 식사(1200원) 대신 구청 인근 도시락 식당서 공기밥(500원)과 간장(200원)으로 끼니를 떼웠다. 그가 쓰는 비용은 밥과 간장 그리고 집과 구청을 오가는 교통비가 전부였다.
그런데 그는 생활비를 매달 구청에서 받는 봉급에서 쓰지 않았다. 월급은 고스란히 저축하고 주말에 택시를 운전하고 폐지를 모아 팔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결국 채 씨는 이렇게 3년 살면서 종자돈 3000만원을 모았다.
◆종자돈이 적어 빌라를 샀고 잘 아는 지역을 먼저 매입했다
채 씨는 막상 종자돈은 모았지만 이를 굴릴 방법은 몰랐다. 그러던 중 한 선배가 부동산 투자를 권했다. 이것이 지금의 '빌라왕 채익종' 시작이었다.
그는 "'가난의 고리를 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밤새 혼자 부동산 책을 읽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퇴근 후 잠을 줄이며 수많은 책을 읽었던 것이다.
그의 첫 투자 부동산은 그가 어린시절 살던 마장교 인근 행당동 지역 도로 부지. 1500만원에 땅 2평을 산 그는 "당시 이 땅은 아파트 82㎡ 입주권 받는 것이 가능했고 주변 환경을 잘 알기에 믿고 매입했다"고 회상했다.
주위에선 많이 우려했다. 그렇지만 그의 땅은 6개월 만에 무려 1000만원 오르면서 주위의 걱정은 사라졌다. 세전 수익률 70%로 성공적 토지 투자였다. 이후 채 씨는 길음동 7평 빌라를 전세 800만원을 끼고 2500만원에 매입해 재개발사업 이후로 1억원대에 팔았고, 성수동의 빌라 두 채를 1억5500만원에 매입한 이후 장기 보유해 6억4500만원을 수중에 남겼다.
그는 주로 재건축 및 재개발 대상지를 다니며 빌라를 샀고 꾸준히 많은 수익을 얻었다. 어느새 그에게는 자산이 엄청나게 붙었다. 주력 자산인 빌라만 해도 망원동, 합정동, 후암동, 이태원, 장충동, 도심 등 수십채다.
그는 "서민은 내집마련을 바라나 너무 아파트만 본다. 재테크 서적 다수도 아파트나 상가만 주목한다"며 "아파트는 물론 상가도 초기 투자금이 억대다. 연봉이 990만원이던 나같은 서민 입장에서는 꿈도 꿔보기 쉽지 않았던 현실에서 빌라는 내게 유일한 대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적은 돈으로 집을 마련하고 투자 가능한 부동산이 빌라고 나는 성공했다"며 "저임금 노동자일 지라도 죽을 각오로 아끼고 아껴 종자돈 수천만원 확보에 성공하면 빌라투자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채 씨는 여전히 빌라 투자만을 고집한다.
채 씨는 빌라 투자에 대해 "부동산 종류별 수익률 비교는 하지 못한다"면서도 "빌라 시세는 워낙 낮기에 한번 상승하기 시작하면 처음 빌라 투자한 사람은 상승폭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라면서 "인생역전을 원한다면 로또 구입보다 확률높은 것이 빌라투자"라고 강조했다.
◆직접 일궈낸 성공 노하우를 나눠주다
약수역 5번 출구에서 1분 정도를 걸으면 우측에 '머니트리(MoneyTree)'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다. 푹신하고 편안한 의자가 있고 다양한 커피와 디저트를 파는 것은 여느 카페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카페는 '빌라 커피' 등을 함께 판다. 채 씨는 이 카페에서 단기 혹은 중장기의 기간동안 교육을 통해 부동산 투자 방법을 알려준다.
그는 그가 온몸으로 터득한 '가난 끊는 방법'을 타인과 나누려고 한다. 그래서 '머니트리' 운영은 물론 2008년 인터넷에 '달랑 부동산의 달인(cafe.naver.com/dadadnc)' 카페를 만들고 최근 책('빌라투자로 100억 부자된 청소부, 출판사 뿌브아르)도 냈다.
채 씨는 "대놓고 무시당하면 차라리 낫다. 알게 모르게 모든 일에서 열외당하며 느끼는 비참함은 당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른다"며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지만, 분명 가난은 모멸감과 불행함을 느끼게 한다. 그렇기에 빨리 빠져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부자 반열에 오르니) 가난한 사람을 모른채 하는 것은 더 큰 죄란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없는 사람도 나처럼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다"며 "책을 쓰고 인터넷 카페를 열어 직접 운영하고 '머니트리'의 전국적인 확장을 추구하는 이유다. 부자들은 모르는 사람 만나는 것을 꺼리며 지내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현재도 소외계층을 위해서 연간 5000만원 가량을 쓰고 있다며 "앞으로 10층 규모의 자선 빌딩을 짓고 싶다. 1~3층에는 카페를 만들어 자족 가능한 기반을 닦고 카페에서 벌어들일 돈을 통해서 윗 층에서 나눔 활동이 가능한 각종 시설을 갖추고 싶다"고 희망을 밝혔다.
또한 가을 새책 '빌라보물지도'를 내고 곧 중형 도시형 생활주택 건설을 앞둔 채 씨는 "다다디앤씨를 매매·임대·인테리어·수리·도배·이사서비스·부동산교육 등 모든 분야의 서비스를 정찰제로 제공하는 부동산 전문 회사로 키우고 싶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설명했다.
<채익종 사장이 말하는 '성공 빌라투자의 비법'>
①인서울·역세권·초도심 : 일부 특정지역은 물론 예외다. 하지만 되도록 확실한 성공 투자처에 투자하는 것이 안정적이다. 싼 곳은 싼 이유가 있고 비싼 곳도 당연히 비싼 이유가 있다. 빌라는 소형 주택이라 객지 생활을 하는 사람의 수요도 있는데 서울 안이 그러한 수요가 많다.
②단독주택도 나쁘지 않지만 다세대주택 : 전세를 끼고 있을 확률이 높고 매매가 대비 전세 비율도 높아 초기 투자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아파트는 물론 단독주택보다 다세대주택에 드는 관리비가 적은 것도 장점.
③발품을 팔아 저평가된 우량 빌라를 : 현장을 발로 뛰는 것만큼 좋은 정보가 없다. 직접 뛰며 정보를 모으고 지가 상승 예상지역을 미리 사둬야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막상 드물다.
④인맥을 관리하고 공인중개사와 친해져라 :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 좋은 정보를 일찍 취하자. 공인중개사는 부동산 투자에 있어 인맥의 기본. 인근 부동산을 수시로 방문해서 친분 관계를 쌓아 정보를 먼저 얻자.
⑤관심을 갖고 열정을 쏟고 긍정적으로 살자 : 만약 부동산 투자로 성공하고 싶다면 앞서간 자를 보며 고민을 하자. 더불어 세상에 부정적 생각을 한다는 것은 낭비다. 앞서가는 자를 인정할 때 나 역시도 앞선 사람들의 축에 든다. 관심을 갖고 열정을 쏟고 목숨걸고 성공투자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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