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리포트> SK와 중국의 인연..대중밀사에서 ‘파부침주’까지

  • 한국기업 최초 베이징에 입성

베이징 중심부에 위치한 SK 타워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SK그룹의 중국과의 인연은 1987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범사회적인 민주화열기속에서 치러진 대선에서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8년 취임하면서부터 북방정책을 야심차게 펼쳐나갔다. 북방정책의 핵심은 러시아, 중국과의 수교였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순탄한 편이었지만 중국과의 수교는 북한이라는 걸림돌이 있었다. 북한과의 혈맹관계인 중국으로서는 한중수교를 체결하면서 북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역시 북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였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은 북한의 시선을 피해 은밀하게 중국과 접촉해야 했으며, 이를 위해 외교관이 아닌 민간인 밀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적임자가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이었다. 최 전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은 사돈간이다.
최 전 회장과 SK그룹은 1988년부터 한중수교 준비에 깊이 관여했다. 최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밀사자격으로 중국측 관료들을 홍콩에서 은밀히 만나기도 하는 등 물밑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그리고 한중수교가 체결되기 전인 1991년 1월, 한중양국이 상대방의 수도에 서로 무역대표부를 설립했는데, 이 과정속에 최종현 전 회장은 큰 기여를 했다. SK그룹이 1991년 한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베이징 지사 설립 허가를 받은 것도 이 같은 공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SKC는 1990년 중국에서 가장 먼저 개방된 지역인 푸젠(福建)성에 중국의 중견기업인 융더신(永德信)그룹과 비디오테이프 합작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1992년 8월 역사적인 한중수교가 체결됐다. 그리고 최 전 회장은 1994년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을 단독으로 예방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 최 전 회장은 당시 장 전 주석을 만나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은 중국에서 단기적으로 이익을 추구해선 안 될 것입니다. 길게 보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SK그룹은 중국에서 번 돈을 다시 중국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한국 기업에게 중국은 외국이 아니라 확장된 하나의 시장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융더신그룹은 1997년부터 SK그룹의 경영기법인 SUPEX를 도입하여 성공을 거두었고 그후 전 그룹에 이를 확대 적용하기 시작했다. 외국 기업이 우리 기업 고유의 경영기법을 도입하여 전계열사에서 활용한 사례는 최초였다.
비디오테이프가 시장에서 사라지면서 지금은 SK의 지분을 철수했지만, 당시 푸젠성 푸칭(福淸)공장에서 시작된 SUPEX 활동은 2002년 10여 개 전체 계열사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으며 SUPEX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한중수교에 끼친 공헌에 비해 SK그룹의 중국 비즈니스는 순탄하지 않았다. SK는 1990년대 초 중국 선전(深圳)에 10억 달러 규모의 정유단지 건설을 추진한 바 있다. 선전시에 정유공장을 짓고 여기에서 나오는 부산물로 석유화학제품을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선전시 정부와 의향서를 주고받고 최종적으로 중앙 정부의 비준만 남겨둔 상태였다. 선전시도 홍콩의 경공업제품 생산기지 역할에서 벗어나 중공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계획이어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듯 했다.

하지만 중국 중앙 정부의 비준이 떨어지지 않았다. 중앙 정부가 이에 대한 답변을 주지 않아 여러 경로로 알아본 결과 에너지 관련 산업이므로 중앙 정부가 투자에 대한 비준을 꺼린다는 답을 얻었다. 결국 SK는 1996년 말 200만 달러의 경비와 그간 들인 공을 포기해야만 했다.
선전 프로젝트가 무산된 이후 SK의 중국 사업은 2~3년 동안 큰 진전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아시아 경제위기가 발생했고 중국 사업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SK의 경쟁력을 중국에 옮기기 위한 시도는 계속되었으나 정부 규제가 많은 에너지와 정보통신을 주축으로 하는 사업구조 특성상 큰 성공 스토리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명운 건 중국사업, 궤도에 오르다

그러던 중 SK 내부에서는 중국 사업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한국과 가까운 넓은 내수시장을 갖고 있는 중국만이 글로벌 사업의 열쇠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SK의 상하이 용제 공장 모습


그리고 2010년 최태원 회장은 ‘파부침주(破釜沈舟)’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중국 비즈니스에 명운을 걸다시피 했다. 그해 1월4일 최태원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세계로 나아가서 성공하고 성장과 안정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답은 파부침주”라면서 “새로운 트렌드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솥을 깨야 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2010년 호랑이해를 ‘파부침주’의 결의를 실현하는 원년으로 선포한다”면서 “새로운 도약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사업을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사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파부침주라는 말은 밥 지을 솥을 깨고 돌아갈 배를 침몰시킨다는 뜻으로 배수의 진을 치고 적과의 전투에 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파부침주는 사회각계에서 광범위하게 인용되면서 SK그룹의 중국사업의 슬로건으로 자리잡았다.
파부침주를 이야기하던 2010년 7월 SK그룹은 중국사업 강화를 위해 중국에 흩어져 있던 각 계열사와 법인을 통합해 ‘SK차이나’를 만들었다. 중국사업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중국사업 회의론’까지 나오자 내놓은 조치였다.

그리고 최태원 회장은 2010년 동북3성에 수차례 출장을 다니며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했다. 지린성(吉林省) 연변조선족자치주의 투먼시•훈춘시 경제발전지구를 시작으로 랴오닝성(遼寧省) 선양시,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시, 지린성(吉林省) 창춘시 등을 방문했다. 지린성의 쑨정차이(孫政才) 서기, 랴오닝성의 왕민(王珉) 서기와 교분을 다졌다. 이들은 중국의 차기 지도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정치인들이다.

최태원 회장은 또한 중국에서 매년 열리는 보아오(博鰲)포럼의 단골참석자다. 보아오포럼장에서 최 회장은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 리커창(李克强) 상무부총리 등 중국의 핵심인사들과 교류하고 있다. 이처럼 최종현 전 회장과 최태원 회장은 2대에 걸쳐 중국내에 방대한 인맥을 구축해 놓고 있다. 거미줄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중국에서 펼쳐질 SK그룹의 진검승부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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