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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연(오른쪽)이 우승 직후 박세리의 축하를 받고 있다. [USGA 홈페이지 캡처] |
아주경제 김경수 기자= 제67회 US여자오픈 3라운드까지 2위에 6타 앞선 최나연(25· SK텔레콤)의 우승은 예견됐다. 그러나 메이저대회 우승경험이 없는 데다가, 코스가 어려운 탓에 최종일 어떤 변수가 일어날 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최나연에게 몇 차례의 위기가 닥쳐왔다. 미국LPGA투어에서 5승을 거둔 그였지만,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한 일도 여러차례 있었기에 보는 사람들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8일(한국시간) 미국 위스콘신주 콜러의 블랙 울프런GC(파72). 양희영(23· KB금융그룹)과 챔피언조로 플레이한 최나연의 첫 번째 위기는 10번홀(파5· 길이 568야드)에서 찾아왔다. 드라이버샷 스윙템포가 빠른 듯하는가 했는데, 볼은 왼쪽 워터 해저드쪽으로 날아갔다. 볼을 찾지 못한 최나연은 1벌타를 받은 후 티잉그라운드로 돌아왔고 그 홀에서 6온2퍼트로 트리블 보기를 하고 말았다. 우승경쟁을 하는 선수가 최종일 후반에 트리플 보기를 하면 치명적이다. 양희영과 타수차가 2타로 줄었다. 그러나 최나연은 곧 평정심을 되찾아 11번홀(길이 368야드)에서 버디로 만회하며 다시 간격을 3타로 벌렸다.
12번홀(452야드)에서도 위기가 닥쳤다. 하이브리드로 친 두 번째 샷이 그린 왼편 깊은 러프에 빠진 것. 최나연은 언플레이어블 볼 처리도 고려했으나 샷을 강행키로 했다. 힘껏 친 볼은 러프를 빠져나가 홀옆 6m 지점에 멈췄다. 갤러리들은 보기를 생각했으나 최나연은 파세이브 퍼트를 성공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미국골프협회 홈페이지에서는 이 순간을 ‘승부의 키(key) 모멘트’라고 표현했다.
위기를 벗어난 최나연에게 아드레날린이 넘친 것일까. 길이 189야드에 오른편은 온통 워터 해저드인 13번홀에서 또한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우드 티샷은 바람을 타고 그린 오른편 해저드 경계선쪽으로 날아갔다. 볼은 그린과 해저드 사이에 놓인 바위에 두 차례 바운스되더니 그린 뒤쪽에 멈췄다. 행운이었다. 세계랭킹 1위 청야니(대만)는 이 장면을 보고 “메이저 챔피언이 되려면 먼저 기량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운도 따라주어야 한다”고 평했다. 30㎝만 빗나갔어도 볼은 연못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면 최나연은 이 홀에서 1∼2타를 잃어 양희영과 긴박한 승부를 벌일 뻔했다.
한숨 돌린 최나연은 15, 16번홀에서 잇따라 버디를 잡고 마침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한 선수 중 최고’라는 라벨을 뗐다.
3라운드 때 80타대 이상 스코어를 낸 선수가 19명이나 될만큼 어렵게 셋업된 코스에서 최나연이 솟구친 원동력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뛰어난 아이언샷 덕분이다. 최나연은 나흘동안 그린적중률 79.2%로 이 부문 랭킹 1위다. 72개홀중 57개홀에서 버디 기회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버디 19개를 솎아냈다. 세 번의 버디 찬스에서 한 번꼴로 성공한 것. 코스 전장이 7000야드에 육박해 당초 ‘장타자’가 유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최나연은 평범한 드라이버샷(평균 247.8야드-랭킹 30위)을 지니고도 송곳같은 아이언샷으로 ‘대어’를 낚았다.
최나연은 우승 퍼트를 한 뒤 선배 박세리와 동료 선수들로부터 샴페인 세례로 축하받았다. 최나연은 “14년 전 이 곳에서 우승한 세리 언니를 TV로 보고 골프선수의 꿈을 키웠다”며 박세리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한국선수들은 이일희(24·볼빅) 박세리 박인비(24)를 포함해 모두 5명이 ‘톱10’에 들었다.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인 뉴질랜드 교포 고보경(15· 리디아 고)은 39위로 ‘베스트 아마추어’에 올랐다. 청야니는 3, 4라운드에서 거푸 78타를 친 끝에 공동 50위에 그쳤다. 이 대회에서만 우승하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그는 ‘대업’을 내년으로 미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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