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백수맞은 국내 최고령 화가 한묵 화백 "나이 잊어버리고 있다"

  • '한국 기하추상의 대부' 22일부터 갤러리현대서 10년만의 개인전<br/>1950년대 초기작부터 현재까지 40여점 전시..생애 첫 화집도 발간

백수의 한묵화백이 갤러리현대 전시장에 걸린 자신의 작품앞에섰다. 사진=박현주기자

한묵화백이 갤러리현대에 전시된 50년대 초기작품을 보며 감회에 젖어있다./사진=박현주기자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내 그림이다." "좋다~". 지팡이를 짚고 전시장을 천천히 둘러던 한묵 화백(본명 한백유·대한민국 예술원회원)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얼굴엔 미소가 번져 있었다. 한 화백을 부축하던 부인은 "말씀이 좀처럼 없으신데 기분이 좋은신가보다"고 했다. 갑자기 주먹을 쥐고 쩌렁쩌렁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지인들은 "옛날처럼 고구려 장군같은 우렁찬 목소리"라고 했다.

올해로 백수(白壽.99세)를 맞은 한 화백은 아이같았다.

오는 22일부터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앞두고 16일 만난 한화백은 귀가 어두워 제대로 이야기하긴 힘들었다. 작품설명 도중에도 "무슨 기자들이 모였어?" 라고 묻기도 하고 궁금증을 혼잣말로 말하는등 주변을 의식하지 않았다.
한 화백 옆에서 그의 말과 '전설'을 설명하는 부인 이충석여사(82)가 바빠졌다.

이날 자리에는 파리유학시절 한화백을 87년부터 만났다는 대전 이응로미술관 이지호관장이 한화백의 작품세계와 인간적인 면모를 소개했다. 그는 한 화백을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화가"라고 했다.

실제로 고령의 화가는, 한 기자가 사진기를 내세우며 웃어달라고 주문하자 "내가 웃고 싶지 않은데 왜 가짜웃음을 지으라고 하느냐"며 인상을 썼다.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살아있는 전설' 한묵화백이 백수를 맞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사진=박현주기자

◆'한국 추상미술의 거목' ' 한국현대미술사의 살아있는 전설'

100세 화가, 행복하냐고 물었다. 계속 딴 이야기를 중얼거리던 화백은 이 질문만큼은 명쾌하게 말했다. "나이를 잊어버리고 있다." 며 허허 웃음소리를 내며 크게 웃었고, 자리에 있던 모두는 저절로 함께 웃었다.

"100세니 90세니 이런식으로 생각하는게 없다. 그저 현재 살고 있는 나이하고, 현재 살고는 있지만 또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 죽은 사람이다. 죽을 사람이거든. 하하하. 죽음가운데 있고, 그래서 살고 있지않는가. 살고 있다는 것, 죽고 있다는 것 신경쓰지 않는다. 죽음은 누구나 만나는거다. 결국 죽음으로 가는 것 심각하지 않다."

노화백의 선문답같은 말에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그가 앉아있는 뒤에 걸린 '하늘의 정'이라는 그림처럼 어떤 울림이 전해졌다.

1992년에 그린 '하늘의 정'(200cm*200cm)은 빨강 노랑 파랑. 삼원색을 주조색으로 동심원이 파동하는 그림이다.

평생을 회화속 공간, 특히 우주공간에 대해 천착해온 화백은 '한국 기하추상의 대부'로 불린다. 그가 우주공간에 '미친'건 1969년 암스트롱의 달착륙 때문이었다. 인간이 달에 간다는 것. 충격은 3년이나 이어졌고 붓도 들지 못했다.

2차원의 화면이 갖는 평면이라는 제약을 벗어나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새로운 4차원의 공간감을 구현하는데 집중했다.
속도와 시간이 문제였다. 지그재그 방사선이 도입되면서 7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공간의 쏘노리테'(sonorite) 시리즈가 나왔다. '아뜨리에 17' 판화연구소에서 수학한 것을 계기로 우주적 공간으로서 4차원의 광활한 공간감을 화면에 담아내게 됐다.

자신이 직접해야 직성이 풀렸다. 2m 화면에 그려야할 원은 직접 제작한 콤파스로, 조수 한명없이 직접 그리고 칠해 우주를 암시하는 작품을 쏟아냈다.
파리에 살고 서양미술을 받아들였지만 한국인이었다. 우주공간의 리듬과 울림을 담고 4차원의 공간감을 추구했지만 작품은 동양의 전통적 세계에 맞닿아 있었다. 현란하면서 역동적인 파동이 느껴지는 작품엔 단청같은 '샤머니즘' 색채가 배어있다.

한화백이 60세까지 독신생활을 하다 만난 부인이 귀가 어두워 이야기가 힘든 화백을 대신해 이야기하고 있다./사진=박현주기자

◆"집도없이 떠돌아다닌 파리생활 눈물"..10년만에 열리는 개인전

한화백의 이번 개인전은 2003년 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이후 10여년만에 열리는 전시다. 늘 "새로운 작품이 나와야 전시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는 한 화백의 고집때문이다. 이번전시에는 신작 4점이 소개된다.

부인은 "지금은 작업을 하지 못하지만 20005~2006년까진 간간히 작업을 했다"고 말했다. 2000년도 심장수술을 한후 작업하기가 수월치 않다고 했다.

1961년 파리를 무대로 활약해온 한 화백은 국내에서 추상미술을 개척한 1세대 작가로서 이중섭 김환기등과 함께 현대미술 태동기에 서구 모더니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개척한 한국 미술사의 산 증인이다.

한화백은 그림뿐만이 아니라 생활에서도 4차원이었다. 1961년 파리로 떠난 화백의 결정은 당시 미술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50년대 주요 재야단체의 하나인 모던아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그였다.
홍대 미대교수로 안정된 생활을 하던 그의 '파리행'은 '화가'라는 직업을 다시생각한다. "이대론 그림 그리기 힘들겠다" 며 도불한 그는 '가난한 환쟁이'의 길을 51년째 이어오고 있다.

화백의 부인은 "고아같이 살았다. 파리 시내에서 살아 더 힘들다"고 했다. 파리 한복판엔 감성을 자극하는 것들이 많아 시내를 못벗어난다고 했다.
부인은 한 화백이 60세까지 독신으로 살다 만났다. 17세 나이차가 났다. 기자생활을 했다는 부인은 여든이 넘은 나이였지만 당시 누가 무슨 말을 했고, 화백이 어떻게 말했는지를 녹음기를 풀듯 전했다. 또 어떤상황에서 그림을 그렸는지도 자세하게 설명했다.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말라고 손사레 치는 부인은 "집이 없어 떠돌아다니다 2005년 겨우 화실을 마련했다"며 "파리생활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라고 했다. 그는 "최근에 중국작가들이 부럽다고 했다. 중국 정부에서 화가에 대한 지원도 대접도 좋아져 중국작가들을 보면 여간 부러운게 아니다"라고 했다.

갤러리현대는 이번 전시를 한 화백의 도불 51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기획했다.

이지호관장은 "이번 전시는 국내 근현대미술자료로도 중요한 기록으로, 근현대미술의 살아있는 역사가 자료화 됐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한화백의 화업을 회고하는 시대별 작품 40여점이 소개된다. 1950년대 초기작부터 2003년 그린 미발표작품도 공개된다. 갤러리현대는 더불어 한국 현대미술사를 함께 걸어온 한 화백의 일생동안의 화업을 담은 작품 100여점이 수록된 화집이 출간한다. 화백에게는 생애 첫 두툼한 화집이다. 전사는 9월 16일까지.(02)2287-3500
1969년 달착륙을 보고 충격에 빠진후 2차원 화면을 4차원적 공간으로, 우주적 공간을 화면에 담아연 한국기하추상의 대부 한묵화백의 개인전이 22일부터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사진=박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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