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성남 분당구 판교동 한 아파트단지 앞에는 과일 '산지직송 판매'라는 문구가 새겨진 봉고차가 분주하게 손님들을 맞고 있다.
바로 앞 대각선 도로에는 떡볶이, 순대, 만두를 파는 트럭이 떡하니 자리잡고 영업을 하고 있으며, 다른 한 켠에서는 땅콩, 호두 등 견과류를 파는 포터가 차지하고 있다. 밤에는 전어와 산낙지 등 제철 생선을 메뉴로 한 미니 트럭형 횟집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종로, 명동, 동대문 등 서울 도심에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이동형 노점상'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8년간 다니던 건설회사가 부도나면서 이동형 노점상을 시작했다는 배모씨(38)는 "현장 근무만 하다보니 새로운 직장을 찾기가 힘들어 고민하던 중 지인의 권유로 소자본 창업이 가능한 '이동형 노점상'을 하게 됐다"며 "중간 이윤이 크진 않지만 매출이 점점 늘고 있고 유지비가 적어 사업 부담이 적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동형 노점상 등 생계형 자영업자가 늘면서 서민의 트럭으로 불리는 1t 소형 트럭 시장은 호재를 거듭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경기 침체가 깊어지면서 포터(현대)와 봉고(기아)는 꾸준히 판매실적을 달성하는 효자 차종으로 자리잡았다.
올해 들어 9월까지 현대차 포터는 6만2200대가 팔렸다. 지난 1월 6000대를 밑돌던 월별 판매량은 3월에 8000대를 훌쩍 넘어서더니 노조 파업으로 조업이 부족했던 8월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평균 7000대를 상회하고 있다. 기아차의 봉고도 지난 1~9월 판매량이 3만4400대를 기록해 내수 부진에도 불구, 호조를 보였던 지난해 수준의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다. 주문이 늘면서 대기시간도 길어져 포터의 경우 두 달, 봉고는 두 달 반 이상 기다려야 만날 수 있다. 이 때문에 계약 해약률도 최근 30%에 육박하고 있는 정도다.
신차 대신 중고차를 알아보는 수요도 늘었다. 포터는 올 들어 중고차 사이트 SK엔카에서 많이 거래된 모델 2위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는 5위였다.
중고차 시장도 최근 3년 사이 중소형 트럭의 거래가 20~3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600만원 미만의 소형 트럭 매매는 '없어서 못 팔 정도'라는 것이 중고차 업계의 전언이다.
노점상 증가에 따라 영세 상인을 대상으로 한 소액대출도 크게 늘어났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영세 상인을 대상으로 한 미소금융 대출이 올 상반기 1323억원 이뤄져 올해 총 금액은 3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출 수요가 늘면서 금융당국은 하반기에 1700억원 수준의 미소금융 대출을 제공하기로 했다.
골목상권살리기소비자연맹 엄태기 행정실장은 "최근 일자리 부족 현상이 심화되면서 트럭으로 상권을 찾아 영업하는 이동형 노점상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며 "대부분 생계형이라는 속사정도 있지만 이는 어렵게 투자해 점포를 얻은 소상공인들의 또다른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정부 차원의 대안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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