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대선은 한국 대선만큼 재미있게 진행되고 있다. 초중반이 넘어가면서까지도 미트 롬니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최근처럼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롬니는 공화당 주별 경선에서도 종반이 다가와서야 ‘정식후보’라는 명함을 팔 수 있었던 사람이다. 큰 흠도 없지만 큰 카리스마나 매력이 없어 많은 공화당 유권자들이 적극적인 지지를 주저했었다.
지난달 롬니의 결정적 실언이 알려지면서 정말 미국 대선이 오바마의 승리로 끝나는구나 결론짓게 한 일도 있었다. 롬니가 부유층 유권자들과 갖은 선거자금 모금 행사에서 “오바마를 지지하는 47%는 정부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라고 한 발언이 알려지면서다. 중산층 이하 서민들은 분노했고 민주당은 적절하게 이 발언을 이용해 오바마의 지지율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는 많게는 10%포인트까지 벌어졌다.
롬니는 미국에서도 소수 기독교 종교인 모르몬을 믿는 사람으로서 지난 2008년 공화당 경선에 출마했다가 존 매케인 의원에게 고배를 마셔야 했다. 당시도 그의 종교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보수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여왔던 티파티도 롬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이 밀어줄 만큼 롬니가 충분히 보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반기 공화당 경선에서 유권자들은 티파티가 좋아했던 인물들을 다 중도 탈락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 전당대회가 지난 8월말 뜨뜨미지근하게 열렸고, 결국 그 이후 롬니의 지지율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난 10월 3일 대선후보 첫 토론회로 상황은 반전됐다. 곱게 자라 억만장자로 어려움을 모르는 롬니가 ‘토론의 달인’ 오바마를 주눅들게 하는 모습은 공화당 유권자들이 정신을 반짝 차리는 계기가 됐다. ‘우리 후보가 나와 선전을 하고 있는데 그동안 뒷짐지고 우리는 뭘 했나’하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돈과 조직이 롬니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결국 큰 격차로 앞서던 오바마는 일부 여론조사에선 뒤지는 입장이 됐다. 롬니는 예전에 포기했던 펜실베이니아 등 일부 경합지역에까지 조직과 돈을 풀며 오바마를 잡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앞서던 사람은 더 힘들게 마련이다. 한 민주당 인사는 “오바마의 지지율은 계속 정체해 있고 롬니는 치고 올라오는 상황이기 때문에 10일도 남지 않은 일정을 감안할 때 롬니 모멘텀이 얼마나 있는지 여부가 선거 결과를 좌우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오바마는 롬니보다 가용 자금도 더 없다. 27일(현지시간) 오바마 캠프가 지지자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은 “상대 캠프가 우리보다 4500만 달러나 현금을 더 쥐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며 선거자금을 내줄 것을 강하게 독려하고 있다.
권투선수들이 하는 말 중에 “한 회 3분이 링 위에 올라가면 얼마나 긴지 해 본 사람만 안다”가 있다. 특히 이기던 선수가 갑자기 상대방으로부터 어퍼컷을 맞고 휘청거리며 점수를 잃으면 시간이 빨리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3분이 너무 긴 시간이다. 지금 오바마는 이기다 어퍼컷을 맞은 권투선수와 비슷하다.
워낙 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대선이다 보니 혹자는 “초특급 허리케인 ‘샌디’ 때문에 오바마가 구사일생으로 대선을 이기나보다”라고 한다. 샌디 상륙과 피해, 지나간 뒤의 피해복구 등을 감안하면 금방 다음주 6일 대선날이다. 선거 직전 가장 중요한 시기에 두 후보는 발도 묶이고 과감하게 유세활동을 못할 수도 있다. 현재 상향 모멘텀이 큰 롬니에게 이같은 돌발변수가 오히려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오바마의 운명이 허리케인 ‘샌디’에 달릴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해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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