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이름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이 말이 맞아떨어지기라도 하듯 최근 서울 강남대로 일대와 이태원은 찾아드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하지만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로데오거리를 거닐고 있으면 ‘비오는 압구정’ 노랫말이 저절로 머릿속을 맴돈다.
1990년대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퇴근시간이나 주말이면 찾아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10대 아이돌 스타부터 30대 직장인들까지 젊은이들이 즐겨 찾아 ‘젊음의 거리’로 불리던 이곳. 그 때 그 로데오거리가 지금은 노랫말 가사처럼 ‘그댈(고객) 기다리다가 혼자 술에 취한’ 듯 울적하고 쓸쓸하다.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의 상권이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불과 1.5km 떨어진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명성을 내준지 오래다. 상가 곳곳에는 문 옆에 나붙은 ‘임대’ 팻말들이 바람에 날려 흔들거리고 있다.
지난해 지하철 분당선 연장 개통으로 주춤했던 상권이 잠시 들썩이기도 했지만, 효과는 짧은 기간에 그치고 말았다.
인근 중개업소에 따르면 분당선 호재로 권리금이 4억원(전용면적 66㎡ 점포 기준) 가까이 올랐던 로데오거리 중심부는 다시 1억원 넘게 떨어졌다. 변두리쪽은 현재 권리금이 5000만~8000만원선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찬바람이 불던 2008년에만 해도 1억5000만~2억원에 이르던 권리금이 5년새 반값으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권리금이 아예 없는 점포가 수두룩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나마 이는 나은 편이다.
하지만 임대료는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전성기에 마구 치솟은 임대료는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상권을 뺏긴 주된 이유가 됐다.
로데오거리 전용 66㎡ 점포들은 평균 보증금 1억원에 월 임대료 500만원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중심부로 갈수록 임대료는 배 이상 뛴다.
압구정 카페골목 근처의 공인중개사 대표는 “로데오거리의 어디에 위치해 있느냐에 따라 임대료 차이가 크다”며 “다만 권리금이 많이 낮아진 데 비해 임대료의 절대값은 변동이 크지 않은 편”이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상권의 대세는 신사동 가로수길일까?
지난 3일 저녁 7시 반. 이날은 직장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요일이라는 금요일이었다. 퇴근 시간 가로수길을 가기 위해 내린 지하철 3호선 신사역 주변은 몰려든 인파로 북적였다.
H&M 등 대형 SPA(제조판매유통 일괄) 브랜드들과 편집숍(특정 아이템에 관한 모든 브랜드를 갖춰 놓은 매장)이 즐비한 가로수길은 2005년부터 차츰 복합문화공간, 일명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몰려드는 수요에 임대료와 권리금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가로수길에 자리 잡은 전용 66㎡ 기준 점포의 월 임대료는 1000만원에 육박한다. 5년 전(300만~350만)에 비해 세 배 가량 뛴 금액이다. 권리금도 3억5000만원에서 4억원을 웃돈다.
작은 점포들은 높은 임대료에 떠밀려 먹거리가 많은 인근 세로수길로 이동하는 추세다.
세로수길에서 전용 50㎡ 남짓한 의류잡화점을 운영하는 매니저는 “1년 새 세로수길 일대 상권 권리금이 2000만~3000만원가량 올랐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인근 K중개업소 사장은 “무권리금이거나 3000만~4000만원이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권리금 1억원으로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세로수길이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강남을 대표하는 상권은 먹이사슬처럼 움직이고 있다. 한 거리가 포화상태에 이르면 상권은 금세 옆 거리로 이동한다.
바로 옆 도산공원 일대 상권은 청담사거리 명품거리가 포화상태가 되자 새롭게 형성된 상권이다.
“베키아앤누보에서 브런치를 먹고 명품숍을 구경하다가 지치면 도산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일대는 최근 젊은층들이 선호하는 쇼핑과 데이트 명소로 부상했다.
에르메스, 마크제이콥스 등 명품 브랜드가 들어서 있는 도산공원 일대는 식사·쇼핑 등 멀티 활동이 가능하다. 가로수길과 함께 강남구 신사동에 속해 있다. 명품업체들로 꽉 찬 이 곳은 불황을 모른다.
도산공원 앞에 위치한 건물 매매가격은 전용 3.3㎡당 1억5000만~2억원 수준으로, 5년 전(6000만~7000만원)보다 2~3배 뛰었다.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한정된 까닭이다.
신사동 Y부동산 관계자는 “도산공원의 인기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고급화 이미지가 각인된 곳으로,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처럼 문화적 특색이 약해지지 않는 이상 지역 건물 매매가격은 꾸준히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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