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 목동 3단지 앞에 내걸린 현수막. 행복주택에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의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
서울 목동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고 있는 김소라씨(43)는 최근 막무가내식으로 행복주택 반대 서명을 요구하는 인근 주민들의 모습에 많이 당황했다.
"얼마 전에는 동대표가 직접 찾아와 행복주택 건립 반대 서명을 요구했어요. 집주인이 아니어서 서명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이곳에 살면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며 강요하더라구요. 혹시 '왕따'를 당하는 게 아닐까 싶어 어쩔 수 없이 서명했죠."
행복주택 건립을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간 갈등뿐 아니라 최근에는 지역주민 사이에서도 불협화음의 불씨가 되고 있다. 정부가 행복주택의 구체적인 방향 등을 서둘러 결정해야 갈등이 최소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주민 갈등 불씨되나
현재 행복주택 건립사업에 반대하는 지자체는 시범사업지구 7개 중 6곳에 이른다. 서울시의회도 지난 12일 본회의에서 '행복주택 일방추진 중단 촉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주민 반대 목소리가 가장 높은 곳은 서울 목동지역. 비상대책위원회까지 구성된 목동에서는 목동 유수지 기능 저해, 과밀학급, 교통정체, 사회기반시설 부족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신정호 주민비대위 위원장은 "행복주택 2800가구를 건립하겠다는 것은 현재 목동의 특성과 현실 등을 외면한 발상"이라며 "정부는 주민의 재산권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반대 목소리가 커지면서 내심 행복주택에 찬성하는 주민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김씨의 경우처럼 어쩔 수 없이 서명하는 세입자도 상당수다.
최근 국토부에 반대 의견을 낸 경기도 안산시의 경우 주민 갈등이 심각한 상황이다. 안산시는 47개 단지에 이르는 재건축사업 위축 및 인근 상가 소유자들의 임대료 감소 등을 이유로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 지역 사회단체인 '비전 안산'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행복주택 찬성이 36.4%, 반대가 21.6%로 나타났다. 안산시의회에서도 "안산시가 일방적으로 정부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7개 지구 중 유일하게 찬성 의견을 낸 지역은 가좌지구. 하지만 이곳에서도 행복주택에 반발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 가좌동 주민 김영호씨(38)는 "출근길 모래내시장 앞은 지금도 교통정체가 심각한데, 행복주택이 들어서면 교통대란은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 행복주택, 길이 있나
행복주택 7개 시범지구가 발표된 것은 지난 5월 20일로 두 달이 다 돼 간다. 정부는 지난 5일 지구지정을 위한 주민공람공고를 끝냈고, 가좌·오류지구는 설계업체를 선정했다. 지난 11일에는 행복주택 실무 태스크포스(TF)팀 합동사무소를 개소했다. TF팀은 국토부와 LH, 한국철도공사,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참여한다.
하지만 주민 갈등문제에 대한 조율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향후 계획 등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최정민 LH 행복주택사업본부 부장은 "주민공람공고 때 들어온 의견들을 검토한 후 수정작업을 거쳐 최종 결론을 내릴 계획"이라며 "아직은 결정된 사항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와 LH는 행복주택 반대 목소리가 커지자 부동산 관련 학계·시장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두고 매달 자문회의를 열고 있다. 지난달에 이어 오는 17일에도 전문가 7~8명이 참여하는 자문회의를 열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도 현재로선 뚜렷한 대안이 없어 고심라고 있다. 자문회의 멤버인 부동산 전문가는 "자문회의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아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데, 솔직히 가서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아무래도 당초 계획을 수정하는 것밖에 대안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임대주택 공급물량을 줄이고 기반시설과 커뮤니티 시설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행복주택이 지역주민간 갈등을 조장하는 장소가 아닌 소통의 장이 되도록 공원이나 도서관 등 커뮤니티 시설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SH공사가 참여하는 방안도 유력해지고 있다. 이미 이재영 LH 사장이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시와 SH공사 참여 필요성을 제기했다.
서울시도 동참 의사를 내비쳤다. 서울시 한 고위 공무원은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인 만큼 서울시의 참여를 공식 요청해오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다만 지역주민 의사를 많이 반영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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