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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겸, 연호대란,견본수묵,33.0*20.3cm./간송미술관 제공. |
아주경제 박현주기자=연꽃이 잦아들기 시작하는 초가을, 평화롭기만 하던 물가에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매가 날아든 것이다. 먹잇감을 찾아나선 매는 통실하게 살찐 오리 한마리를 택해 곧 내리꽂아 낚아챌 기세다. 오리는 필사적으로 물속으로 파고들고 그 옆의 백로는 혼비백산 튀어 달아난다. 시든 연잎사이에 몸을 숨기고 숨죽인채 관망하는 오리 한마리의 표정도 느낌이 살아있다.
쫓기는 오리와 백로의 절박함이 270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 그림은 누렇게 변한 세월속에서도 여전히 흥미진진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불염재 김희겸(1710~?)'연호대란'이라는 그림이다. 화면 우측 상단에 '임술년 중추에 중익이 그리다'를 쓰고 도장을 두방 찍어 마무리한 이 그림은 1742년 음력 음력 8월 8일, 그의 나이 33세때 그린 그림이다.
'진경풍속화의 시조'겸재의 화풍을 계승한 김희겸은 산수화를 주로 그렸던 화원화가다.
매년 봄과 가을 두차례 딱 15일만 전시를 여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올 가을 '진경시대 화원'들의 그림을 선보인다.
오는 13일부터 여는 이번 전시에는 진경시대 궁중 미술가였던 김희겸을 비롯해 화원화가 21명의 80여점이 나온다.
‘진경시대’는 숙종(1675~1720)부터 정조(1776~1800)에 걸친 125년의 기간을 일컫는데 조선왕조 후기 문화가 고유색을 한껏 드러내며 발전을 이룬 문화절정기를 뜻한다.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진경문화가 이 시대에 고유색을 드러내며 난만하게 꽃피워낼수 있었던 것은 조선 초기를 지배한 주자성리학의 자리를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 의해 심화 발전한 조선성리학이 대신하면서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유이념이 생겼다는 자긍심은 회화에도 영향을 줘 그림에서도 우리 국토와 민족의 풍속을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 내면의 정신성까지 묘사해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진경산수화와 풍속화의 토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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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 환선정, 견본수묵, 41.0cm*91.4cm |
진경풍속화의 효시는 1711년 겸재가 36세때 그린 '신묘년 풍악도첩'이다. 이후 겸재는 평생 지속적으로 진경풍속화를 그렸고 이 풍속화는 10년 후배인 관아재 조영석(1686~1761)에게 이어져 관아재는 풍속화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최완수 소장은 "헌재 심사정, 표암 강세황, 단원 김홍도 고송유수관 이인문등 이들이 화원화가라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면서 "겸재가 진경산수화풍의 시조이고 관아재가 풍속화풍의 시조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조선성리학 이념에 투철한 선두주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간송미술관의 올해 가을 전시는 이런 진경시대회화사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간송미술관은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진경시대화원화가들의 그림들 중에서 각 시기의 특징을 잘 들어내는 그림을 선별했다"며 "우리문화 황금기 진경시대로 화원화가들을 만나보는 그림여행을 떠나보기 바란다"고 소개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도 볼수 있다. 전시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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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 단오풍정,지본채색,35.6cm*28,2cm.간송미술관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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