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정준 군포소방서장) |
이렇듯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감정이라는 것은 존재하며, 그것은 누군가가 강요하거나 억지로 갖겠다고 다짐해서 가져지는 마음은 아님에 틀림없다. 청명하고 맑은 것은 비단 하늘만이 아니라 그 아래 존재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존재할 것이다. 저 높은 하늘과 같이 맑고 청명한 인간의 수많은 감정 중에서 ‘백일홍’의 청렴을 생각해 본다. 이 얼마나 아름다우면서도 숭고한 단어인가!
공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오랜 기간 지켜내야 할 자신의 청렴, 이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단어 역시도 아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에머슨(1803~1882, Emerson, Ralph Waldo)은 청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청렴보다 더 신성한 것은 없다.”라고. 이 문장을 보면서 필자는 이렇게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면 과연 청렴이라는 것이 공직자에게만 중요시되고, 공직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단어인가? 이상론적인 이야기지만, 청렴이라는 것은 세상을 둘러싸고 있는 불변의 진리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불변의 진리는 현재 사랑, 존경, 박애, 도덕 등의 많은 단어로 통용되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중 하나가 청렴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로 청렴이라 함은 공직자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그 정표가 되는 단어라고 말하고 싶다.
한 나라를 통솔하고 대표하는 대통령부터, 국민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가 지켜나가고 가질 수 있는 인간으로써의 권리이자 의무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국제투명성기구의 청렴도(부패인식지수)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10점 만점 중 5.4점으로 조사대상 178개국 중 39위에 머물렀으며,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국민의 약 85%가 공직사회의 알선·청탁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질적 가치가 정신적 가치를 억제하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새인 것이다.
배롱나무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요즈음, 옛 향교나 서원 등을 찾아가보면 많이 심어져 있는 배롱나무는 100일간 꽃이 핀다고 하여 ‘백일홍’이라고도 불린다. 이 나무는 청렴(淸廉)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나무로 알려져 있다. 아마 새하얀 꽃이 마치 순결함과 진실함, 곧 청렴함을 상징하기에 그렇게 되지 않았나 싶다. 어느덧 만연하게 핀 배롱나무 꽃처럼 우리 사회에도 청렴이 만발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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