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이어진 3대의 1인 지배체제 확립 과정에서 숙청된 고위 인사들은 많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사형 집행을 대대적으로 공개한 적은 1950년대 박헌영과 그 남로당계 처형 이후 극히 이례적인 것이다.
김 주석은 6ㆍ25 남침 실패로 정치적 입지가 불안해지자 195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고 '소련파'인 박창옥 등 남로당계 인사들에게 책임을 씌웠다.
이듬해인 1953년 8월 남로당계 숙청 재판을 열고 남로당계 2인자였던 이승엽을 '미제의 간첩'으로 몰아 먼저 처형했고 1955년 12월에는 남로당계 수장인 박헌영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당시 북한은 박헌영의 재판 기록까지 책자로 만들어 배포했다.
당시 북한의 2인자였던 박헌영에게 적용된 혐의는 반당 종파분자ㆍ간첩 방조ㆍ정부전복 음모 등으로 장성택의 죄목과 유사하다.
1967년 숙청된 '갑산파'의 우두머리 박금철과 김도만ㆍ리효순 등도 사형됐다는 공식보도는 없었다.
공개 처형은 김정일 체제 들어 가장 많이 이뤄졌지만 사형 사실을 공개한 적은 없었다.
이런 처형은 수도 없이 있었지만 이번과 같이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등 공식매체를 통해 사형 집행을 공개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2010년 3월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총살한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나 2011년 초 간첩죄로 처형된 류경 전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의 사형 집행 역시 비공개로 진행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장성택의 사형에 대한 공개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