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경제 이수경 기자 = 지난해 은행의 예금회전율이 7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기업들이 결제를 위해 넣어두는 당좌예금 회전율이 크게 줄었다.
올해도 낮은 수준의 회전율이 이어질 전망이다. 경기가 회복기조에 있으나 기업들의 설비투자나 소비 등 내수 개선세는 아직까지 불안한 상태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1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예금은행의 예금회전율은 연 3.7회로 지난 2006년(3.5회) 이후 7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예금회전율은 예금통화의 월중 지급액을 평균잔액으로 나눈 값으로, 은행에 넣어둔 예금에서 얼마나 자주 자금을 인출했는가를 나타낸다. 회전율이 낮을수록 돈의 유통 속도가 느리다는 뜻이다.
가계와 기업이 일시적으로 자금을 넣어두는 요구불 예금의 회전율은 지난해 28.9회였고 저축성 예금 회전율은 1.1회를 기록했다. 모두 2007년 이후 최저수준이다.
특히 지난해 기업 간 결제수단용 자금인 당좌예금 회전율은 504.8회로, 역시 400회대를 기록하던 2006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기업들이 투자를 위해 은행에 넣어둔 자금을 빼는 횟수가 줄었다는 얘기다.
예금회전율이 낮아진 것은 경제활동 둔화가 요인으로 꼽힌다. 미국 등 선진국 경제의 불확실성과 이로 인한 글로벌 경제성장세 둔화로 국내 경기도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경제주체들인 기업과 가계가 투자와 소비를 줄인 것이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기업이 예금은행에 예치한 총 예금은 310조8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이 기간 설비투자는 전년대비 1.5% 감소해 2012년(-1.9%)에 이어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기업이 투자를 꺼리고 자금을 은행에 쌓아뒀다는 얘기다.
가계 역시 주택경기 침체 등으로 자산가치가 떨어지고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소비를 줄이고 여유자금을 은행에 넣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민간소비는 1년 전보다 1.9% 늘었지만, 10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등이 향후 제약요인으로 지적된다.
은행의 예금회전율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4.6회를 기록했지만 2010년 4.4회 2011년 4.2회 2012년 3.9회에 이어 지난해까지 4년째 둔화하고 있다. 자금을 묶어두는 상황이 지속되면 실물경제로 흘러들어가는 자금이 줄어 자칫 경제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올해는 경제상황이 좀더 나아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통화 유통속도도 덩달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임 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경제 회복세에 따라 수출이 증가하면서 설비투자도 늘어날 것"이라며 "공장 가동률이 낮긴 하나 노후화된 장비 등을 감안하면 지난해보단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은이 전망한 올해 설비투자 성장률은 연간 5.8%다. 이전 전망치보다 0.1%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다만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전에 워낙 투자규모가 낮았던 데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로 인해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높아지면 돈을 굴리기보단 묻어두려는 성향이 강해질 수 있다"면서 "큰 틀에서 경기가 반등하고 있어 투자규모도 늘어나겠지만 회복세는 완만한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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