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사진 = 강희제]

[사진 = 툴강]

[사진 = 고비사막]
▶ 차질 빚은 공격 전략
하지만 동로군이 바얀 우란지역에 합류하는 시점이 늦어져 강희제는 일단 동로군을 할하강 지역에 머물도록 했다. 그래서 서로군과 중로군으로 갈단을 상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작전은 처음부터 차질이 빚어졌던 것이다.

[사진 = 강희제 행차]
비록 5월이라고는 하지만 몽골은 아직 봄이 제대로 찾아오지 않은 시기라 눈이 내리기 일쑤였다. 할 수 없이 강희제는 진군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 이미 도주한 갈단의 군대

[사진 = 갈단과 강희제 전투]
이미 갈단의 군대는 청나라 군대를 피해 현장을 떠난 뒤였기 때문이었다. 각종 의상과 불상, 먹다 남은 음식 등 급하게 현장을 떠난 흔적만 남았을 뿐 준가르 병사들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신 주변의 할하인들이 달려와 강희제가 친정에 나선 것을 찬양하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 유목민 군대, 강한 적 만나면 도주
유목민 군대에게 강한 적을 만나면 도망가는 것은 수치가 아닌 정당한 전술이었다. 갈단은 내몽골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싸운 것은 적의 강한 곳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어렵게 했다는 점에서 이내 후회했다. 그래서 청나라와 대결하는 전략을 다시 세웠다. 먼저 적의 진영을 공격해 들어가지 않고 적을 초원으로 유인해 유리한 국면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목민들에게 인심을 얻어가면서 기회가 오면 적을 격멸시켜 큰 뜻을 이루는 방법이 적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소수의 병력과 마주치면 싸우고 다수와 마주치면 후퇴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다가 청군이 퇴각하면 후미를 공격해 물고 늘어진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오래 동안 괴롭히다 보면 청군은 식량이 떨어지고 사기도 떨어질 것이 분명하다고 여긴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승기(勝機)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렇지만 청나라 황제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친정에 나설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청나라 황제가 자신의 군대보다 몇 배나 되는 병력을 이끌고 사람도 다니지 않는 사막을 건너 초원까지 밀려온 상황이라 갈단은 일단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다. 마음이 급해진 갈단은 물건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도주 길에 올랐다. 강한 적을 피해 서둘러 달아나는 원래의 전략을 택했던 것이다.
▶ 철군 길에 오른 강희제

[사진 = 몽골 동부 초원의 말떼]
계속 갈단의 군대를 찾아 나서는 것도 위험하지만 철군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현지에 도착해 갈단군의 서쪽 퇴로를 차단하기로 한 서로군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강희제는 할 수 없이 소수의 정예부대를 편성한 뒤 20일치의 식량을 주어 갈단을 계속 추격하도록 했다. 그리고 나머지 군대를 이끌고 전진기지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갈단군을 포착해 그들을 격파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듯 했다. 그런 만큼 적의 모습조차 포착하지도 못한 채 말머리를 돌려야 하는 강희제의 실망감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 원정 중 황태자에게 보낸 편지

[사진 = 황태자 윤잉]

[사진 = 강희제의 만주어 편지(대만 고궁박물관)]

[사진 = 초원의 양떼]
그런 인간적인 면이 강희제를 오랫동안 어려운 황제자리를 지켜가도록 만든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갈단과 강희제의 대결에서 갈단 측의 움직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반면 청나라 측 움직임에 대한 기록이 비교적 상세히 남아 있는 것도 강희제가 남긴 기록이 워낙 많기 때문일 것이다.
▶ 철수 길에 오른 실망감 배인 편지
군대를 철수시키면서 강희제가 황태자에게 보낸 편지 속에 당시의 심정이 나타나 있다.
"군대를 이끌고 전진하는 순간에는 완전히 한마음으로 혼란함이 없었다. 이제 군대를 뽑아 달아난 갈단을 뒤쫓게 했다. 이제 귀로에 오르니 견딜 수 없게 네가 보고 싶구나.
날씨가 더워졌으니 네가 입는 면사 면포의 긴 옷 네 벌과 상의 네 벌을 반드시 입던 것으로 보내라. 아버지가 너를 보고 싶을 때 입고 싶구나. 내가 있는 이곳에는 양고기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지난번 보내준 송화강 송어는 기쁘게 먹었다. 살찐 거위와 닭, 돼지, 새끼돼지를 3대의 수레에 실어 상도의 목장으로 가져오게 해라. 내가 전진(前進)을 하는 것이라면 결코 이런 주문을 할 리가 없다.
갈단의 움직임을 보면 아무래도 멈출 것 같지 않구나. 단지 서로군이 바로 오면 갈단은 거기서 끝장 날 것이다. 만일 빠져 나간다 해도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하늘아래 땅위에서 할하의 땅과 같은 곳은 없다. 풀이 있는 장소보다 좋은 곳은 만에 하나 천에 하나 있을 수 없다."
▶ 황태자 폐위 아픔 겪는 강희제
갈단을 잡지 못하고 귀로에 오른 실망감이 편지 속에 배여 있다. 드넓은 초원에 대한 애정도 엿보인다. 이와 함께 아들에 대한 따듯한 사랑 역시 편지 속에서 묻어나고 있다. 하지만 강희제는 나중에 방종한 생활에 물들었다는 이유 등으로 황태자인 아들을 두 번이나 폐위시키는 아픔을 맛보게 된다. 아들을 폐위시킨 강희제는 슬픔으로 며칠 간 잠을 자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사진 = 옹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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