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71년 김 전 대통령이 첫 대선을 도전할 당시 이 여사는 찬조 연사를 통해 “만약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고 말해 심금을 울렸다.
이후 이 여사는 ‘인동초’라는 표현과 같이 정치적 고난을 김 전 대통령과 함께하며 용기와 힘을 불어넣었다.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쿠데타에 항거해 해외에서 반대 투쟁을 하던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당신만이 한국을 대표해서 말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며 “정부에서는 당신이 외국에서 성명 내는 것과 국제적 여론을 제일 두려워한다고 한다. 특히 미워하는 대상이 당신이므로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독려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징역 5년이 확정된 1977년에는 옥바라지를 하며 수백 통의 편지를 부치기도 했다. 이 여사는 편지에 “하루를 살더라고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이겠느냐”며 “그렇기에 우리들은 당신의 고통스러운 생활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떳떳함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썼다.
또 다른 편지에서는 “당신의 생이 평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욱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습니다”라며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바르게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유난히 강했고 그래서 받은 것이 고난의 상”이라고 격려했다.
2008년 김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이 여사는 “제 남편은 일생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많은 오해를 받으면서도 오로지 인권과 남북의 화해, 협력을 위해 노력해왔다”며 “권력의 회유와 압력도 있었으나 한 번도 굴한 일이 없다”고 회고했다.
이어 “제가 바라옵기는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며 “이것이 남편의 유지”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고(故) 이희호 여사, 고 김대중 전 대통령(왼쪽부터)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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