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대화자의 비밀녹음 금지법,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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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빈 기자
입력 2022-08-2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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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한결]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누구든지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상 징역형으로 처벌된다. 그렇게 취득한 녹음은 소송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도 없다. 다만, 타인 간 대화 비밀녹음을 금지할 뿐 대화를 하는 당사자 간 비밀녹음은 금지하고 있지 않다. 직접 대화나 전화 통화를 하면서 상대방 동의를 받지 않고 녹음하더라도 처벌되지 않는 이유다. 1993년 통신비밀보호법을 제정한 이유가 국가기관 등에 의한 전기통신의 감청∙우편물의 검열 등에서 국민의 통신∙대화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것도 금지될지 모른다. 윤상현 등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대화 참여자도 대화 상대방 모두의 동의 없이는 대화를 녹음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대화 참여자 중 한 명이라도 동의를 받지 못하면 1년 이상 징역형으로 처벌될 수 있다. 심지어 비밀녹음에 성공하지 못한 미수범도 처벌된다. 대화를 녹음하기 위해서 휴대전화를 꺼내거나 만지는 순간 이미 범행에 착수하여 미수범으로 처벌될 수 있는 것이다.
 
윤 의원 등은 개정안이 필요한 이유로 '사생활의 자유' '통신 비밀의 자유' '음성권' 침해를 들었다. 그러나 개정 이유로 제시된 근거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화자 간에는 이미 그 대화 내용이 공유되고 있으므로 그것을 녹음한다고 하여 '사생활의 자유' '통신 비밀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제3자가 몰래 녹음한다면 그러한 자유가 침해되겠지만 그것은 도청·감청에 해당하여 현행법으로도 이미 무겁게 처벌하고 있다. 그럼 남는 것은 음성권인데, 음성권은 개정안에 의해서만 보호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지금도 대화자 간 비밀녹음은 음성권 침해로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는 경우가 있다.
 
음성권은 우리 헌법 제10조에 의한 인격권 중 하나로 인정되고 있다. 법원은 ‘자신의 음성이 함부로 녹음되거나 재생·방송·복제·배포되지 않을 권리’로 정의하고 있다. 음성권에 대한 부당한 침해는 불법행위를 구성하여 녹음자는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이미 법원 판례도 여럿 나와 있다. 법원은 대화자 간에 비밀녹음을 하게 된 경위와 그 내용, 피해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녹음자의 승낙이 추정’되거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사정’이 없으면 위법한 것으로 보아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녹음자에게 비밀녹음을 통해 달성하려는 정당한 목적 또는 이익이 있고, 이를 위하여 필요한 범위에서 상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져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면 비밀녹음은 지금도 위법행위로서 금지되고 있는 것이다. 대화자 간 비밀녹음이 아무런 불이익 없이 무한정 허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 현재와 같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대화자 간 비밀녹음을 하거나 시도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윤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녹음이 협박 등 범죄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협박죄 등 목적이 된 범죄의 형벌 규정으로 처벌하면 족하다. 윤 의원은 일부 국가에서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이 불법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으나 우리도 무조건 허용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개정안으로 얻을 실익은 찾기 어렵지만 그 피해는 분명해 보인다. 비밀녹음이 범죄의 증거로, 특히 피해자의 증거 확보 수단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물리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강자는 굳이 증거 확보를 위해 비밀녹음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강자는 그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각서, 경위서, 사진 등 다른 증거들을 쉽게 받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강자는 기존 증거 확보 수단에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다. 대화 녹음을 하고자 하면 약자의 동의를 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약자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증거개시제도 등 약자에게 공평한 소송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 우리 소송법제하에서 비밀녹음은 그나마 유력한 소송 무기가 되었으나 개정안에 의하면 그것도 불가능해진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김건희 여사 7시간 비밀녹음 사건이 떠들썩했다. 한 기자가 김건희 여사와 대화한 내용을 몰래 녹음했다. 여러 매체가 이를 방송하려 하자 김건희 여사는 법원에 방송금지가처분을 제기하였다. 방송 금지를 구하는 첫 번째 근거가 동의받지 않은 불법 녹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원은 통신비밀보호법상 금지된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주장을 배척하였고 녹음이 방송되었다. 당시에 개정안이 시행 중이었다면 그 녹음과 방송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이 사건 직후 윤 의원은 비밀녹음을 금지하는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7개월 후 실제로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이번 개정안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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