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 성추행에 극단적 선택...대법 "가해자에 구상권 행사 못해"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장한지 기자
입력 2022-09-14 09:59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궁극적인 책임은 근로복지공단에 있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22.05.11[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직장 상사의 성희롱‧성추행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피해자에게 산재보험금을 선지급한 근로복지공단이 가해 근로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직장 상사는 '동료 근로자'에 해당해 구상 대상에서 제외해야 하는 '제3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당시 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근로복지공단이 성희롱·성추행 가해자 A씨를 상대로 낸 구상금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지난달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한 기업의 책임연구원이던 A씨는 입사한 지 불과 5개월 된 사회초년생 B씨를 2년여에 걸쳐 지속해서 성희롱·성추행했다. A씨는 B씨에게 “남자친구와 어디까지 갔느냐” “내가 자자고 하면 잘래”라는 등 막말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성추행도 당한 B씨는 A씨를 신고했고, 회사는 감사를 진행했다. 그러나 B씨가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감사는 끝났다. B씨는 근무지를 옮겼지만 정신적인 피해에 시달렸고, 2017년 9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A씨는 B씨를 강제로 껴안거나 엉덩이를 만지는 등의 혐의(강제추행)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 1000만원이 확정됐다. A씨 범죄사실에 성희롱은 포함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은 B씨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유족에게 유족급여 등 모두 1억6000여만원을 우선 지급한 뒤 A씨에게 구상금 1억5000여만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A씨를 ‘동료 근로자’라고 봐야 하는지, ‘성추행을 한 제3자’로 봐야 하는지 여부였다. 현행 산재보험법은 근로복지공단이 제3자의 행위에 따른 재해로 보험급여를 지급했다면 원인 제공을 한 제3자를 상대로 피해자 대신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A씨는 '동일한 사업주에 의해 고용된 동료 근로자'는 '제3자'의 범주에서 제외한다는 2004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면서 근로복지공단이 자신에게서 돈을 받아갈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과 2심은 A씨에게 1억4000만원의 구상금 지급을 명령하며 근로복지공단의 손을 들어줬다. A씨의 가해 행위는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아무리 동료 근로자라도 궁극적인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사회 정의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A씨가 든 대법원 판례는 '고의'로 재해사고를 일으킨 동료 근로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판단도 내놨다. 2004년 대법원 판례에는 가해행위가 고의인지, 과실인지 명백한 판단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근로복지공단이 A씨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동료 근로자에 의한 가해 행위로 다른 근로자가 재해를 입어 업무상 재해가 인정되는 경우, 그 가해 행위는 사업장이 갖는 하나의 위험이라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그 위험이 현실화해 발생한 업무상 재해에 대해서는 근로복지공단이 궁극적인 보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 산업재해보상보험의 사회보험적·책임보험적 성격에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판결은 과실뿐만 아니라 고의로 피해자에게 업무상 재해를 입힌 가해자도 근로복지공단 구상 대상인 '제3자'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등 2004년 대법원 판례를 더 구체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