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부터 캐나다와 멕시코에 부과하기로 했던 25% 관세를 시행 반나절을 남기고 한 달간 전격 유예하기로 했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대대적인 국경 경비 강화 조치를 약속하면서 관세를 무기로 휘두르며 외교 협상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트럼프식 ‘미치광이 전략’이 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중국에 대해 예고한 10% 추가 관세는 반전 없이 예정대로 발효된 가운데 중국은 미국을 겨냥해 10~15%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등 반격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통화한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멕시코가 멕시코-미국 국경에 1만명의 군병력을 즉시 보내기로 했다면서 대(對)멕시코 25% 전면 관세를 한 달 유예한다고 밝혔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과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같은 날 오후 통화 결과를 공개하면서 마찬가지로 미국의 대캐나다 관세 부과의 1개월 유예를 각각 발표했다. 캐나다는 미국-캐나다 국경 강화에 13억달러를 투입하고 인력 1만명을 배치하기로 했다. 아울러 합성 마약류인 펜타닐 문제를 전담하는 차르(총책임자)를 임명하고, 마약 카르텔을 테러단체로 지정하기로 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캐나다 및 멕시코에 25%, 중국에 추가로 10%의 보편적 관세를 각각 부과키로 결정했다면서 이들 3국에 대한 실제 관세 부과는 4일부터 시작된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멕시코는 향후 한 달간 재무부, 상무부, 국무부 등이 참여하는 가운데 미국의 25% 관세 시행 여부 등을 놓고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고했던 관세 부과를 유예하는 것만으로 남쪽과 북쪽 국경 경비가 한층 강화되는 효과를 누리게 됐다. 트럼프식 압박 전술이 제대로 먹혀든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집권 당시에도 특유의 미치광이 전략을 펼쳤다. 이 전략은 자신을 마치 미치광이인 것처럼 보이게 해 상대방에게 공포를 유발하면서 협상을 유리하게 가져가는 것을 말한다. 이는 냉전 시대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대통령이 북베트남을 배후 지원하는 소련을 상대로 구사하면서 주목받은 이후 국제 정치 무대에서 드물지 않게 등장해왔다. 스탠다드차터드의 이코노미스트 댄 판은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불확실성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기보다는 관세 위협을 협상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10일부터 일부 미국 상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고,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에는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보복 조치를 발표하면서 미·중 간에 무역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중국이 보복 관세 부과 개시 시점을 10일로 상정한 것은 미국과의 협상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중간에도 10일 이전에 극적 타협이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이번 관세 부과 조치에 대해 “협상용이 아니다”라고 부인한 바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지역적으로는 유럽연합(EU)에, 산업 부문별로는 반도체, 철강, 알루미늄, 구리, 석유, 가스 등에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반도체가 주력 수출품인 한국도 영향권에 들어간다. 모건스탠리는 1일 보고서에서 한국과 대만의 대미 수출 노출도(총 매출 기준)가 가장 높은 것에 주목하며 “한국 등 국가가 첫 번째 단계의 관세 부과 대상이 되진 않았지만, 우리는 반도체를 포함한 필수 품목에 보편 관세와 관세가 모두 부과될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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