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혜숙 이화여자대학교 전자전기공학전공 교수]
인공지능 (AI) 기술의 발전은 내 일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OpenAI가 개발한 대화형 언어 모델인 ChatGPT를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면서, 마치 똑똑한 비서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제는 웹에서 일일이 정보를 검색할 필요가 없다. 생성형 인공지능 초기 버전은 사전에 학습된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답변을 생성했기 때문에 최신 정보 반영이 어려웠지만, 최근 버전은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신속하게 검색하여 원하는 정보를 정리하여 제공한다. 일례로 대선 주자들의 AI 관련 정책을 비교해봐 달라고 하니, 몇 개 영역으로 분류하여 표를 만들어 비교해주었다. 생성형 AI 모델의 할루시네이션 (사실처럼 보이는 오류) 문제가 아직 완전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어서, 정확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추가적 검증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제는 생성형 AI를 통해 너무나 쉽게 원하는 형태의 답을 얻을 수 있다.
특정 상황을 설명하고 이 상황에 맞는 영어 연설문을 유머를 섞어서 작성해달라고 요청하니, 적절한 유머를 가미한 글 한 편을 뚝딱 완성해주었다. 형식과 표현이 정형화되어 있고 조금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참고 자료로 매우 유용하다. 같은 단어의 반복을 피하고 싶을 때 대체할 표현을 물어보기도 하고, 상황에 맞는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도 도움을 받는다. 강의 동영상에 자막을 넣는 작업도 음성인식 기능이 탑재된 AI 도구를 활용하여 쉽게 진행한다.
AI 기술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화할 것이며 우리의 일상과 산업에 큰 변화를 일으킬 강력한 도구이다. 최근 한국공학한림원과 국회 미래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정책 토론회에서 AI는 인재, 에너지와 함께 대전환 시대의 혁신과 도약의 3대 축으로 꼽혔다. AI는 모든 산업의 기반 구조와 운영체계 전반을 재편하는 ‘디지털 전환’의 뿌리 기술로 산업 혁신의 중심이자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 무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ChatGPT와 같은 초거대 언어 모델뿐 아니라, 산업별로 특화된 응용 모델까지 포괄하는 AI 생태계 구축 여부가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AI의 핵심 기술인 우리나라만의 언어 모델을 개발할 필요성에 더불어, AI를 구체적으로 활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 응용 분야를 개발·육성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로봇 등의 기계장치에 시각을 부여하여 주위 상황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고, 언어를 통해 로봇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시각-언어-행동 모델이나,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데이터를 수집하고 수집된 데이터를 사용해 사전 결정된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작업을 스스로 결정하여 수행하는 AI 에이전트 또한 산업 응용에 필수적인 기술이 될 것이다.
그런데 ChatGPT와 같이 서버를 기반으로 하는 AI는 생태 환경적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 이러한 AI는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의 단말에서 입력한 질문을 클라우드 서버로 전송해 답변을 생성한 후, 답변을 단말에 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클라우드형 AI는 모델을 저장·운영하는 데이터 센터에서 수백 메가와트 이상의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며, 이에 따른 다량의 탄소배출과 더불어 고성능 연산으로 발생하는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시스템 사용 등 다양한 환경적 부담을 초래한다.
서버 기반의 AI 기술과는 달리, 온디바이스 (On-Device) AI는 경량화된 AI 모델을 단말에 직접 저장하여 학습과 추론을 자체적으로 수행한다. 이를 통해 학습 데이터가 단말 내에서만 처리되어 개인정보 보호가 강화되며, 네트워크 연결 없이도 AI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클라우드 서버를 상시 이용하는 것이 아니므로 전력 비용 절감과 탄소배출 감소 등의 환경적 이점도 제공한다. 향후 온디바이스 AI는 사용자 데이터로 학습된 모델(데이터 자체가 아닌)을 클라우드로 전송하고, 다양한 단말 기기에서 전송된 모델들이 클라우드에서 연합학습을 통해 업데이트되고, 이렇게 업데이트된 모델은 다시 단말로 전송되어 학습과 추론에 활용되는 혼합형 AI 구조로 발전할 것이며, AI 산업의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온디바이스 AI 기술은 또한 장애인들이 겪는 장벽을 완화하여 접근성을 강화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개발한 Seeing AI는 카메라에 음성인식과 자연어 처리 기능을 더하여, 시각 장애인이 주변 환경을 인지하도록 도움을 주는 도구이다. 카메라로 보는 사물을 AI를 사용해 청각적으로 설명하거나 카메라로 스캔한 문서를 소리 내 읽어 주기도 하고, 인스타그램 등에 올라온 이미지를 인식하여 이를 설명하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다른 예로 지적 장애나 학습 장애가 있는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복잡하고 어려운 문장을 단순한 문장과 쉬운 단어로 바꿔주거나, 그림과 아이콘 등의 시각적 정보로 변환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는 AI 도구도 있다. 인공지능 기술이 잘 활용된다면 장애인들이 잠재력을 발휘하고 역량을 끌어올려 장애인들의 전반적인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온디바이스 AI 구현에 필요한 기반 기술과 환경을 갖추고 있다. 자동차, 스마트폰, 가전, 로봇, IoT 등 다양한 단말 기술, AI 모델의 저장 및 운용에 필수적인 HBM과 같은 고대역 메모리 기술, LG나 네이버 등 우리 기업이 자체 개발한 언어 모델, 엔비디아 GPU를 대체할 국산 AI 반도체, 단말 간 혹은 클라우드와 단말 간 정보전송을 위한 고속 통신 인프라, 그리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수용성 등이 뒷받침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온디바이스 AI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AI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데이터의 수집, 공유 및 활용, 품질 향상 등을 통한 데이터 생태계 구축과 개인정보 보호와 윤리적 문제 해결을 위한 AI 활용 가이드라인, 산업 AI 확산 법령 정비 및 지원 조직의 강화, 국가 AI 표준을 정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 이에 더하여 기업, 연구기관, 개발자들이 협력하여 AI 기술과 솔루션을 공동으로 개발하는 플랫폼 구축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이를 통해 양질의 데이터가 공유되고 우수한 알고리즘이 개발된다면 우리나라의 AI 경쟁력이 크게 올라갈 수 있다.
글로벌 AI 패권 경쟁은 중국이 개발한 AI 언어 모델인 ‘딥시크’ 돌풍으로 새로운 국면에 진입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AI 분야 압도적 경쟁우위 확보를 위한 정책적 지원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선 주자들이 앞다투어 AI 강국 도약을 위한 정책을 발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AI 패권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이 선도적인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리나라가 가진 특성과 강점을 살린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대규모 언어 모델, 산업 응용 AI 기술, 온디바이스 AI 기술 등의 연구개발에 더하여 AI 산업 생태계 활성화 노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균형 잡힌 노력이 필요하다.
필자 주요 이력
△이화여대 전자전기공학전공 교수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 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 제50대 대한전자공학회 회장 △IEEE Fe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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