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썸 오지급 사태로 가상자산 시장이 또 한번 휘청이면서, ‘탈중앙화’를 내세웠던 비트코인의 출발점이 거래소 중심 구조 속에서 퇴색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거래소 중심 구조가 고착되면서 ‘중앙 없는 화폐’라는 비트코인의 기본 철학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가상자산 시장이 거래소 중심의 중앙화 구조로 재편되면서, 당초 지향했던 탈중앙화 원칙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상자산은 중앙 서버나 신뢰 기관을 거치지 않는 개인 간 거래(P2P) 체제를 지향하며 등장했다. 경제 위기 때마다 통화를 대량 발행하는 중앙은행 체제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면서, 제3의 신뢰 기관 없이도 거래가 가능한 화폐를 만들겠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현실 시장에서 탈중앙화는 이상에 가까웠다고 지적한다. 현재 가상자산 생태계는 거래소를 중심으로 운영되며, 구조적으로는 기존 금융 시스템의 중앙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시장 형성 초기 사익을 추구하는 거래소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면서, 개인이 자산을 직접 통제한다는 탈중앙화 원칙이 약화됐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가상자산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거래소와 당국의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확산됐다. 책임 주체가 분명해야 소비자 보호가 가능하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박수용 서강대 교수는 “정부와 의사결정 구조가 존재하는 현재 사회 체제에서는 일정 수준의 중앙화가 불가피하게 유입될 수밖에 없다”며 “탈중앙화로 사라지는 역할을 대체할 준비가 충분히 돼 있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윤석빈 서강대 교수도 “탈중앙화 구조에서는 블록체인상에서 거래 확정을 받기까지 20~40분이 걸리는 등 속도와 비용 측면의 한계가 있다”며 “현실 서비스 환경에서는 중앙화된 구조가 선택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탈중앙화를 내세웠던 가상자산이 현실에서는 거래소 중심 구조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 빗썸 오지급 사태는 중앙화 리스크를 드러낸 사례로 평가된다. 거래소 보유량의 수천 배에 달하는 ‘유령 코인’이 지급되면서, 거래소 장부상 자산의 실재 여부에 대한 근본적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국회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자산 2단계 법안에서 거래소 대주주 규제와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이번 사고가 규제 강화를 촉발하며, 시장 구조를 더욱 공고한 중앙화 체제로 이끌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형중 고려대 교수는 “가상자산에 이어 스테이블코인 등 새로운 금융 혁명을 앞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탈중앙화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며 “중앙화된 시스템 안에서도 소비자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금융 혁신으로 가는 더 현실적인 경로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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