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정의 여행 미학] 명절 피로 씻어내는 떡볶이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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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I가 생성한 이미지]
명절은 손끝에 남은 기름의 냄새로 기억된다. 사흘 밤낮 뜨거운 팬 위에서 지져낸 전과 고소한 갈비찜의 향연은 명절의 풍요료움을 대변한다. 하지만 연휴가 끝나갈수록 그 풍요는 눅진한 피로로 변해 몸 구석구석을 파고든다. 혀끝은 무뎌지고 속은 더부룩하다. 이럴 때 우리에겐 미각의 전원을 다시 켜 줄 강력한 ‘빨간 스위치’가 필요하다. 그래, 떡볶이를 먹어야겠다.

나에게 떡볶이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명절 내내 타인을 위해 분주했던 ‘나’를 다시 일상으로 복귀시키는 짧고 확실한 의식이다. 끈적한 고추장 소스 속에 저마다의 미학을 숨겨둔 떡볶이 오대장을 골랐다. 
 
금미옥 떡볶이와 무침만두 김말이 사진금미옥
금미옥 떡볶이와 무침만두, 김말이 [사진=금미옥]
 
힙한 성수의 맛 전국으로…우리집 식탁에서 즐기는 ‘금미옥’

"떡볶이는 원래 이런 맛입니다."

성수동의 좁은 골목을 뜨겁게 달구며 ‘블루리본 서베이’에 이름을 올렸던 금미옥의 미학이, 이제는 전국의 식탁 위로 반경을 넓혀 우리네 식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줄을 서는 수고로움 대신 택배 상자에 담겨온 이 간편식은 명절 뒤 지친 이들에게 주는 가장 세련된 보상이다. 

성수에서 출발해 이제는 명실상부한 유통형 브랜드로 자리 잡은 이곳의 매력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감각적인 맛의 균형을 자랑한다. 

이곳은 취향에 따라 ‘인생 떡볶이’를 선택할 수 있는 영리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100% 국내산 쌀로 빚어낸 가래떡 쌀떡볶이는 꾸덕한 양념이 떡의 속살까지 빈틈없이 스며들어 묵직한 저작감을 선사하고,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인 밀떡볶이는 매끈한 식감으로 목을 타고 넘어간다.

특히 인위적인 설탕의 단맛 대신 100% 국내산 양파 등 채소에서 우려낸 자연스러운 감칠맛이 혀끝을 부드럽게 감싸는 것이 금미옥 떡볶이의 특징이다. 

떡볶이 국물의 영원한 단짝인 바삭한 김말이와 군만두까지 곁들이면, 내 집 주방은 어느덧 성수동의 가장 힙한 미식 공간으로 변모한다.
 
사진기수정 기자
남동공단 떡볶이 [사진=기수정 기자]
 
공단의 시간 위에서 보글보글... ‘남동공단 떡볶이’

인천 남동공단 일대에서 ‘공단 사람들의 소울푸드’로 불리며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이곳은 기다림조차 미학이 되는 공간이다.

이곳의 떡볶이는 기이할 정도로 투명하고 맑은 빛깔을 띤다. 하지만 그 연한 색감 뒤에는 멸치 육수의 깊은 감칠맛이 응축되어 반전의 묘미를 선사한다. 

말캉한 밀떡의 식감과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은근하게 당기는 매운맛이 혀끝을 스쳐 매끄럽게 넘어간다. 명절 뒤 예민해진 속을 부드럽게 다독이는 맛이다.

화려한 기교 대신 시간의 무게로 끓여낸 이 한 그릇은, 삭막한 공단 풍경 속에서 피어난 가장 따스한 추억의 맛이다.
 
사진기수정 기자
윤옥연 할매 떡볶이 [사진=기수정 기자]
 
후추가 선사하는 날카로운 각성...대구 ‘윤옥연 할매 떡볶이’

대구 신천시장의 전설로 통하는 이곳은 단맛과의 타협을 거부한 ‘불친절한 맛’의 정수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떡볶이의 달착지근한 맛을 기대했다면 당혹감부터 마주하게 된다. 설탕 등 단맛을 내기 위한 재료를 일절 배제한 채, 윤옥연 할머니가 직접 제조한 양념장과 알싸한 후추로만 맛의 정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들어선 이들은 마치 마법에 걸린 듯 "이천 천 천"을 외친다. 떡볶이와 튀긴 어묵, 튀긴 만두를 각각 1000원씩 주문하던 ‘천천천’의 추억은 이제 떡볶이 가격 인상과 함께 ‘이천 천 천’으로 변했지만, 그 속에 담긴 투박한 정서는 여전하다.

검붉은 국물을 한 술 뜨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며 뇌는 날카롭게 각성한다. 기름기에 절어 있던 미각들이 후추의 알싸한 칼날에 베여 나가듯 씻겨 내려가는 경험은 오직 이곳에서만 가능하다. 특히 튀긴 어묵과 만두를 소스에 푹 찍어 먹는 것은 이곳의 절대 규칙. 설탕이 주지 못하는 이 원초적인 자극은 명절 내내 쌓인 속의 답답함을 단숨에 뚫어주는 ‘미식적 사이다’이자, 돌아서면 다시 생각나 택배 주문서까지 쓰게 만드는 중독적인 ‘빨간 처방전’이다.

명절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시간을 나누는 축제였으나, 그 뒤안길엔 늘 나만의 시간이 고프기 마련이다. 자, 이제 기름 냄새 가득한 앞치마를 과감히 벗어던지자. 우리의 영혼을 달랠 빨간 맛이기다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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