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세계무역기구) 비가입국 가운데 최대 경제규모국인 러시아의 WTO 가입 여부가 국제적으로 이슈화되고 있다.
러시아의 지난 7월 그루지야 사태 이후 미국 등 일부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 의 일환으로 WTO 가입을 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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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TO(세계무역기구) 전경. |
러시아의 WTO 가입 협상은 오는 11월부터 재개될 전망이다.
현재 한국의 기업들은 러시아의 성장잠재력과 내수시장의 확대를 바탕으로 러시아 시장에 진출하고 있으며 무역투자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출 위주의 정책에서 현지 투자 위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한․러 교역량 규모는 1992년 통상 초기 2억 달러를 시작으로 2007년에는 150억 달러, 올해는 2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WTO 가입은 한국 기업들의 대러시아 시장진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 줄 것으로 보인다.
WTO 미가입국 가운데 최대 경제규모를 차지하는 러시아는 세계 무역대국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국제무역에 참여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WTO 가입을 추진해오고 있다.
러시아의 WTO 가입은 2006년 11월 미국과 양자협상을 타결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1993년 6월 WTO의 전신인 GATT(제네바관세협정)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이래 올해 최종 가입을 목표로 이번에 전쟁을 치른 그루지야를 제외하고 153개 회원국과 양자 협정을 마무리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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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총리는 WTO 가입에 대해 “WTO는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도 아닌 단지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이 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입장을 피력했다. |
그러나 지난 9월 1일 EU 정상회의는 그루지야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경고 조치로 새 파트너십 협정 논의를 잠정 중단했다.
서구는 선진 8개국에서 러시아를 배제하고 경제적 파트너십을 확대하기 위한 양측 간 각종 회담의 연기나 지원 취소,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보이콧 등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제재의 패를 놓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지난 8월 31일 WTO 가입을 위한 사전 협정 가운데 농업 등 자국의 이익에 배치되는 일부를 일시적으로 보류하기로 했다.
한국무역협회 구아팀 성광현 팀장은 “러시아는 WTO 가입 여부를 올해 안에 결론지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자국의 무역상황을 국제기준에 맞춰야 하는 일이므로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WTO 가입을 통해 무역활성화, 산업경쟁력 제고, 산업다각화, 소비자 후생증대 등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러시아와 EU간 새 파트너십 협정 체결 논의는 이달 중 재개될 예정이다.
러시아가 WTO의 경제 체제에 편입될 경우 먼저 에너지 가격 구도의 변화가 생기게 된다. 현재는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가스 및 원유에 대해 국내 보급가와 국외 수출가에 2중 가격제를 적용하고 있으나 WTO 가입으로 이에 대한 단일가격제가 실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농업 등 1차 산업의 경우 그간 러시아 정부의 보조 정책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WTO 가입이 이뤄지면 정부의 보조금을 더 이상 지원할 수 없게 되고 그로 인해 러시아 농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기는 점차 힘겨운 상황이 될 전망이다.
자동차 및 기계 설비 산업에서 항공산업, 야금산업, 화학산업, 식료품산업 등은 기술 수준의발전이 필요한 분야로 WTO 가입 시 선진 기업과의 경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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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전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006년 11월 세인트 피츠버그 G8회담에서 러시아의 WTO 가입과 관련해 합의점을 모았다. |
한․러 주력 산업의 특징을 알 수 있는 대세계현시비교우위지수(RCA)를 보면 한국은 자동차, 정밀기기, 기계․전기․전자, 섬유, 플라스틱․고무, 철강 등에서 비교우위를 나타냈다. 그러나 2차 산업 전채와 목재․가구, 비철금속 등에서는 낮은 RCA를 기록하고 있다.
러시아는 석유․석탄, 목재․가구, 철강 등 광물성 연료 및 원자재 산업에 현시비교우위를 가지고 있으나,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낮은 RCA를 보여 경제가 광물성 연료 미 원자재산업에 의존적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RCA 결과를 통해 한․러 양국은 산업별로 극단적인 대조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양국이 상호 보완적인 경제관계에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들은 러시아가 WTO 가입을 계기로 관세, 부가가치세를 인하고 다양한 비관세장벽을 철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비효율적인 통관절차, 복잡한 조세 및 회계기준, 관료주의 등이 심각한 비관세장벽인 것으로 꼽혔다.
한국기업은 러시아의 WTO 가입에 대비해 현지투자의 활성화, R&D 투자 및 기술협력 확대, 민간통상네트워크의 구축 등을 중심으로 적극적인 대러시아 투자진출전략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러시아가 WTO에 가입하면 전반적인 구매력 상승과 관세인하가 예상된다. 따라서 주요 선진국 기업들과의 경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비관세장벽을 효과적으로 회피할 수 있는 현지투자를 적극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러시아의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R&D 투자 및 기술협력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게 된다. 러시아가 보유하고 있는 원천기술과 인적자원은 한국의 첨단산업기업들이 러시아에 현지투자를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또 한국기업들은 현지에 다양한 통상네트워크를 구축해 양국간 통상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동종업계의 기업 간 자매결연, 러시아 내 한국인 상공인단체 결성, 박람회 및 전시회 활성화, 문화 및 예술교류행사 활성화 등의 실천방안의 마련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러시아의 WTO 가입이 한국의 입장에서 반드시 좋은 기회가 아니라는 것도 주목할 만한 결과다. 현재까지 국내 주요 제조업체들은 러시아 시장에서 선점효과를 누려왔다.
그러나 러시아가 WTO에 가입해 무역투자환경이 개선될 경우 러시아에서 국내외 기업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정진희 기자 snowwa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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