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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으로 지어진 갤러리 내부에는 연분홍의 ‘신몽유도원도’가 걸렸다. 겸재 정선의 ‘박연폭포’ 전기의 ‘매화초옥도’도 보인다. 모두 중견화가 석철주(59)의 작품이다. 추계예대 교수이기도 한 작가는 전통적인 수묵화의 표현방식에서 벗어나 다양한 소재와 기법을 시험적으로 도입,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는 한국화가다.
내달 20일까지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는 석철주의 개인전에는 특유의 몽환적인 색감과 입체감이 웅장하게 다가온다. 본관에는 한국의 고전을 재해석한 작품을, 신관에는 ‘자연의 기억’과 ‘도자기’ 연작으로 나눠 전시된다. 150호 이상의 그림들은 흰 바탕의 벽을 타고 정교하게 자리 잡아 있다.
본관에 위치해 있는 조선시대의 산수화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그의 작품은 가까이 다가가서 감상해야 작품의 입체감을 실감할 수 있다. ‘신몽유도원도’의 산수 절경 구석구석과 ‘매화초옥도’의 흐드러진 매화의 품새는 색의 농도에 차이를 둬 독특하게 표현됐다.
작가는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바탕에 짙은 빨강을 깔고 그 위에 하얀 색을 입혔다. 그 위에 물을 묽게 칠하고 붓과 물을 활용해 표면을 긁어내는 기법을 사용해 몽환적인 느낌을 더했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두루 쓰인 배경은 붉은색이 주역에서 악귀를 쫒아내는 색을 상징하고 청색은 순수와 진리를 나타내는 데 쓰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술평론가 김상철은 석철주의 작품 세계에 대해 “그의 작업 과정은 두텁고 완강한 틀을 깨는 것의 연속이다. 그는 치열한 자기부정을 통해 오늘의 좌표를 확인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작가가 작품 속으로 품어내고자 했던 이미지는 옛 모습 그대로다. 자연의 소박하고 전원적인 가치가 고스란히 살아있다.
신관에 자리한 ‘자연의 기억’과 ‘도자기’ 연작은 현실의 풍경을 담아냈다. 존재감조차 없는 잡초의 무성한 초상을 통해 자연에 섬세함을 덧입혔다. ‘크레파스 긁어내기’와 같은 기법을 활용한 무수한 행위의 흔적들은 작가의 열정을 대변한다. 황금빛의 혹은 초록빛 하늘빛 보라빛으로 형상화한 잡초들은 더 이상 존재감마저 상실한 채 누워있는 들판의 풀이 아니다.
‘달항아리’ ‘청화백자’ 작품들은 언뜻 보기에 백자 표면에 산수화를 그려놓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활용된 재료는 자작나무 합판이다. 감쪽같은 ‘눈속임’은 작가의 끊임없는 조형 재료 연구가 거듭됐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푸른빛을 띈 산수풍경은 바탕을 이루는 흰색과 어우러져 청아함을 더한다.
중년을 훌쩍 넘긴 작가는 얼마 전 무릎 연골 수술을 받았다고 말한다. 쪼그리고 서서 작업해야 하는 방대한 크기의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단다. 그의 변화무쌍한 치열한 작업과정이야말로 한국화의 발전을 기대하는 비평가들의 시선을 비껴갈 수 없는 이유다.
아주경제= 정진희 기자 snowwa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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