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삼성전자가 도시바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한 이후 17년 동안 D램 시장은 한국의 독무대였다. 국내 업체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세계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절반을 훌쩍 넘는 57.2%에 달한다.
특히 40나노급 DDR3 공정을 갖추고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있는 기업도 국내 두 기업이 유일하다. 3분기 실적 역시 이들 양사(삼성전자 1.15조, 하이닉스 2090억. 연결기준)를 제외하면 대부분 적자를 지속하거나 미미한 수준의 흑자전환에 그쳤다.
과거 10년 주기로 D램 선도 국가가 교체되던 선례를 넘어 장기 독주체제를 마련한 셈이다. 1970년 초창기 미국이 주도하던 D램 시장은 1980년대 초 일본에 주도권이 넘어왔다. 그리고 1992년 주도권을 가져온 한국은 10년여 만인 2000년 초중반 하이닉스의 경영악화와 대만 업체들의 급성장으로 인해 왕좌를 대만에 내어줄 위기에 처했었다.
실제로 미국 마이크론과 독일 키몬다에 매각 직전까지 갔었던 하이닉스는 내부의 끈질긴 노력과 채권단의 통 큰 결정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본금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끊임없는 비용절감과 수율개선을 통해 2위 자리를 지켰다.
이렇다 할 주인 없이 구성원들의 땀과 노력만으로 이끌어온 하이닉스는 최근 2~3년 동안 지속된 치킨게임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독일 키몬다가 파산하고, 대만의 6개 D램 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합종연횡에 나서는 등 위기를 버티지 못한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D램 독주 체제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최근 인수에 나선 효성의 상황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단독 인수 주체인 효성은 예비 인수제안서 마감시한인 지난달 30일까지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 2일까지 시간유예를 요청했지만 최근 특혜 시비와 비자금 조성, 오너 자녀들의 해외 부동산 불법 취득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인수가 쉽지 않아 보인다. 증권가에서는 “2일 효성이 인수포기 의사를 밝힐 것”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다.
때문에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중국 기업들의 하이닉스 인수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해외 사모펀드들도 인수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매각될 경우 하이닉스의 장기발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중국기업들은 과거 쌍용차 사례처럼 약속한 투자는 뒤로 미루고 하이닉스의 기술만 챙길 수 있다. 특히 최근 중국은 대만 IT업계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렵사리 경쟁에서 승리한 국내 기업이 오히려 경쟁국가에게 힘을 실어주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해외 사모펀드 역시 향후 D램 시황이 좋을 것이라는 예측 아래 단기적인 단물 빼먹기에 나설 가능성이 짙다. 이럴 경우 하이닉스는 단기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주요 설비 투자가 지연돼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하이닉스는 워크아웃 상황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이겨냈으며 향후 오랜 기간 충분한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굳이 급하게 매각을 시도할 경우 오히려 헐값에 하이닉스를 넘기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세계 최고 수준의 개발·양산 기술을 갖춘 하이닉스가 해외 경쟁사에 넘어갈 경우 오랜 기간 어렵사리 지켜온 한국의 D램 시장 독주 역시 위협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주경제= 이하늘 기자 eh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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