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민 편집위원(일본 문예춘추 서울 특파원) |
평소 코미디프로를 거의 보지 않는 필자는 집에서 아이들에게 부탁해 인터넷으로 그 프로그램의 다시보기를 시청해 보았다. 내용은 1등만을 중시하는 우리사회의 현 세태를 비꼬는 풍자 개그였다.
유치원생들이 그 말뜻을 알고 흉내를 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흉내 낸 '개그 카피'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수석 합격한 학생, 또는 서울대 수석 합격한 학생이 큰 뉴스가 돼 대부분의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요즘은 최고점수 동점자가 여러명 나오는 때문인지 수석합격자 인터뷰 기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수석합격은 그 본인과 가족 친지들에게 경사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이 전국의 뉴스가 될 만한 기사거리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외국기자들은 이런 뉴스를 보고 참 의아하게 생각한다. 1등만을 기억하는 우리사회의 한 단면일 것이다.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교육에 대해 좋은 평가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가 한국의 사교육열풍에 대해 알고 한 발언인지 궁금할 뿐이다.
한 때는 1년에 한국을 떠나는 2만여명의 이민자 중에, 교육문제 때문에 이민간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자식들 사교육을 위해 대기업 임원의 부인이 파트타임 일을 한다는 얘기는 이제 진부한 얘기다. 아무튼 한국의 교육열은 단연 세계 최고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런 이상한 현상은 모두 "1등만을 기억하는 우리사회의 풍조"에서 비롯됐다.
한국의 가벼운 사회분위기는 '성형공화국 대한민국'에서도 나타난다. 요전 한 신문의 설문조사에서 2000여명의 여대생 응답자 중 25%가 성형했다고 답했다. 성형 유경험자 중 약 80%가 다시 성형을 하고 싶다고 답했고, 성형수술 경험이 없는 약 80%가 '하고 싶다'고 밝혔다고 한다. 가히 '성형중독공화국'이다.
한국은 왜 이렇게 젊은 여성들의 성형천국이 되어 버린 것일까. 그건 바로 우리 사회의 외모 중시 현상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TV 등에서도 내면보다 외모를 중요시하는 풍조를 은연 중에 부추긴다. 취직을 준비하는 여대생들이 성형을 많이 하는 것도 이 사회가 그런 것을 선호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최고가 가장 선(善)인 사회가 돼 버렸다.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야 하고, 최고의 기업에 입사해야 하고, 무조건 부자가 돼야 하고, 무조건 예뻐야 하고, 무조건 키가 커야하고, 이렇게 우리의 모든 가치관은 '최고가 선'이 돼 버린 지 이미 오래다.
이런 사회풍조에 거부감을 갖던 사람들도 처음에는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지만 머지않아 그런 풍조의 배를 함께 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한 여대생의 '루저' 발언이 뜨거운 화제가 됐던 것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박한 외모지상주의에 젖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내적인 아름다움보다는 외견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기 때문에, 그 여학생도 친구들끼리 수다 떨면서나 할 수 있는 얘기를 TV방송에서 거리낌 없이 말하지 않았을까.
이 사건은 문제발언을 거르지 않고 내보낸 프로그램 관계자들도 이런 '경박한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함께 함몰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사회는 각 분야의 어른들에 대한 인식이 너무 가볍다. 젊음은 순발력은 있지만 원숙함이 부족함은 어쩔 수 없다. "참을 수 없는 이 사회의 가벼움"을 어떻게 되돌려야 할 것인가. 그것은 '선비사상'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옛 선비들은 배움에 정진하면서 가볍지 않고 진중했고 내면의 세계를 추구했다. 좀 더 진중한 사회로 돌아 갈 필요성이 제기되는 시점이다.
아주경제= 박승민 편집위원(일본 문예춘추 서울특파원) yous11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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