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세 번째 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를 찾았다. 면도날 같은 바람이 불었다. 눈발은 그치지 않고 이리로 저리로 엇갈려 휘날렸다. 일관제철소 부지만 여의도 면적의 2.5배. 휑하던 현장은 여기저기 못 보던 건물들이 들어차 있었다.
5일 충남 당진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제1고로 화입식에 참석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의 표정은 날씨와 상관없이 밝았다.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때부터 33년 숙원이던 일관제철소가 실제로 쇳물을 쏟아내기 위한 화입(火入)에 들어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정 회장 자신도 올해 일흔셋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매주 두 세 번씩 건설 현장을 직접 찾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현대家가 일관제철소 설립을 추진한 것은 33년 전인 1977년께다. 1976년 국내 최초의 국산 승용차인 ‘포니’를 내세워 해외 수출을 했지만 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자동차 강판의 품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고품질의 강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고로 제철소 사업 진출을 생각하게 된다.
정 명예회장이 1977년 정부에 고로제철소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설립안을 냈지만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허하지 않았다. 포항제철 때문이었다. 1994년과 1996년에도 기회를 엿봤지만 정부는 비슷한 이유를 들어 들어주지 않았다.
아들인 정몽구 회장이 1997년 다시 제철소를 세우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번에는 정부가 아니라 당시 경제가 도움을 주지 않았다. IMF 구제금융 사태로 사업이 취소된 것이다. 그새 정 명예회장은 2001년 3월 21일 일관제철소 건설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았다.
그러나 아들인 정몽구 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아버지의 꿈을 이어받아 고로사업에 일로매진한다. 삼고초려, 칠전팔기. 2000년 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뒤 2004년 정태수 회장이 이끌던 당진 한보철강을 인수하며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다.
이런 노력이 하늘에 닿았을까? 2006년 결국 정부로부터 승인을 얻게 된다. 그해 10월 27일 드디어 당진에서 일관제철소 건설을 위한 기공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건설을 허한 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참석했다.
그로부터 30개월 뒤인 2010년 1월 5일 오전 10시. 정 명예회장의 숙원이던 일관제철소의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인생의 절반을 고로 제철소 건설에 바친 정몽구 회장의 모습에서 정 명예회장이 오버랩 되는 것은 그래서다.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강한 의지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은 내년 제2고로 완공까지 챙기게 된다. 하지만 2015년으로 예정된 3고로는 아마도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로, 다시 아들로 이어지는 3대의 노력이 꽃을 피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아주경제=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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