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헤지 통화옵션상품 '키코(KIKO) 사태'로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었던 수출 중소기업들. 지난 8일 본안소송 첫 판결이 은행 측 완승으로 끝나면서 불안감이 커지는 모양새다.
이번 판결이 118건에 달하는 키코 관련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는 수산중공업이 키코 계약 무효를 주장하며 우리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부분적으로 환위험을 회피할 수 있게 설계된데다 키코 옵션계약 조항도 일방적인 약관이 아닌 만큼 처음부터 불공정한 상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다른 수출기업 아이티씨도 같은 이유로 한국씨티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이 기각됐다.
키코는 환율이 약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기업이 은행에 높은 가격에 달러를 팔아 차익을 볼 수 있지만, 환율이 상한선을 넘어가면 계약금액의 2~3배를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에 팔아야 돼 손해를 보도록 설계한 상품이다.
외환손실의 최소 방어막으로 여겼던 키코에 가입한 것이 수출기업에는 족쇄가 된 꼴이다.
이번 판결도 "형평성에 어긋났다"며 강하게 성토했다. 재판부가 은행 측에 키코 상품의 마진 구조와 관련된 문서를 제출할 것을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업 비밀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는 주장이다.
키코 피해 중소기업의 모임인 환헤지피해기업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 따르면 키코로 피해를 본 기업만 900여개, 피해액만 최소 5조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공대위 측은 오는 10일 재판부의 성급한 판결을 규탄하고 은행의 부도덕한 사기행각에 대한 형사고발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다. 기업과 은행간 키코전쟁이 2라운드에 돌입한 셈이다.
어느 중견기업 관계자는 "키코가 수출기업만 할퀴고 갔다고도 할 수 없고....어찌됐건 이번 판결로 은행 측의 '칼자루'가 더 강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억울하다'는 윤리적 배신감으로 어느 한 쪽에 '죄'를 물릴 수 사안이 아닌 만큼 지난 경험을 밑거름 상아 합리적인 중재안을 내는 등 적극적인 대책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아주경제= 변해정 기자 hjpyu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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