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생김새 때문에 공연한 욕을 먹는 정치인은 이명박 대통령뿐 아닐 것이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1997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회창 선진한국당 총재도 생김새로 구설수에 올랐었다. 눈매가 왠지 인정사정없어 보이고 선민의식(先民意識)이 있을 것 같다는 말이 돌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웃을 때 약간 일그러지는 작은 눈매가 옹고집으로 느껴진다며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 일본, 중국과의 우호외교와 서브프라임 사태 후 폭풍의 무난한 수습, 원전 수주 성공과 수백억원대의 사재 기부, 국민원로회의와 사회통합위원회 설치 등 칭찬받을 업적이 쌓였는데도, 몹쓸 별명에 시달리며 이미지를 헐뜯기는 데 외모가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다.
그런 이 대통령이 얼마 전 서울 노원구 하계동의 한 사회적 기업을 방문하면서 안경을 썼다. 갈색 뿔테 안경을 쓴 그의 눈매가 훨씬 부드러워 보였고 학자풍으로 느껴졌다. 잘했다. 본인의 평생 고집스런 스타일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대중 정치인으로서 프로페셔널한 선택을 한 건 늦으나마 백번 잘한 일이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재임시 보톡스 주사를 맞거나 눈꺼풀 성형을 하며 외모를 관리해 그나마 욕을 덜 먹었다는 평가를 듣는다. 정치적 라이벌에겐 가혹해도 대중들에게는 듣기 좋은 소리를 잘 하고 부드럽게 미소짓는 타이밍을 잘 맞추며 스킨십도 과감해 인기를 얻었는데, 외모까지 잘 관리해 덕을 봤다는 것이다.
잘 생긴 외모가 대중적 인기 비결이 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테지만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달한 20세기 이후에는 못 생긴 사람들이 서러워 할 정도로 외모 집착증이 강한 시대가 됐다. 날 때부터 미남 미녀인 배우, 탤런트, 가수들도 기미 한 점 티끌 한 개에 악성 댓글이 달리고 ‘성형은 예의’라며 칭찬받는 지경까지 왔다.
남의 일이라고만 여기던 ‘외모 운운’ 사태가 자기에게 닥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할까? 평소 궁금했는데 마침내 내 일로 닥치고 말아 ‘외모 콤플렉스 실험의 모르모트’ 신세가 됐다.
대전 KBS ‘생생 토론’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아파트 미분양 사태 속 전세 대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하는 데 패널로 출연해 달라며 연락이 왔다. 덜컥 겁이 났다. 부실한 치아가 아직 공사 중인 데다 뒷머리가 휑한 외모 때문이다.
헌데 작가, 앵커와 이야기를 주고받다보니 너무 흥분해버려 “당신같은 패널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야 말았다. 젊잖게 고사할 타이밍을 놓쳐버려 어물어물 ‘네, 그러죠’ 해버렸다.
‘꼭 참석하고야 말리라’ 오기가 돋은 건 아내의 반응 때문이다. ‘방송출연’ 말이 나오자마자 이맛살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치는 데 비위가 확 상하며 결기(決起)가 동한 것이다.
이유가 뭐냐고 따지자 그녀의 손가락이 턱과 뒷머리를 향했다. 짐작한 대로지만 불쾌했다. “아니, 와이프가 돼 가지고 대안은 안 내놓고 무조건 안 된다니? 인종차별도 아니고….”
마침내 녹화 날이 왔고 시위하듯 대전행 KTX에 몸을 실었다. 적어도 TV 토론이고 게다가 첫 토론 프로 출연인데, 준비고 뭐고 콤플렉스에 전전긍긍 시달리다 마침내 방송국 앞에 당도한 것이다.
녹화는 단 한차례의 NG없이 무사히 끝났다. 앵커의 부드러운 진행과 다른 전문가 패널들의 핑퐁도 좋았다. 차례가 오자 거침없이 소신을 토로한 외모 콤플렉스에 빠진 한 인간도 패널로서 기본을 지켰다.
하지만, 서울 오는 내내 그리고 서울에 와서도 외모 콤플렉스는 물귀신이 됐다. 실제 방송이 나오는 걸 보는 게 영 부담스럽고 아직도 ‘에잇, 거절할 걸’하는 기분에 시달린다.
이명박 대통령이 안경을 쓰고 TV에 출연했다. 눈매가 한결 부드러워 보인다. 욕을 덜 먹겠군. 좋겠다. 그런데 나는 울적하다. 아내에게 묻고 싶다. ‘못생기면 죄송한 거냐?’고.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욕설이 추가되는 걸 감수하고라도 말이다.
외모 콤플렉스가 분위기 탓인지, 생김새 탓인지 헷갈리는 시대다.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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