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지주의 성장 과정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라응찬 회장이다.
라응찬 회장은 1991년부터 신한은행장을 3번 연임한 후 이인호 후임 행장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났지만 2년 후 지주회사가 설립되자 신한금융은 망설임없이 라 회장을 수장으로 선택했다.
걸음마를 시작한 신한금융에 라 회장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외환위기를 전후해 은행권이 인수합병(M&A)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있을 때 라 회장은 한 발 물러나 사업라인 다각화에 힘을 쏟았다.
이른바 '선 겸업화 후 대형화' 전략은 신한금융이 '고객중심'의 경영 철학을 유지하면서도 국내 굴지의 금융그룹으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라 회장이 신한금융을 이끌었던 지난 10년간 연평균 당기순이익 성장률은 25%에 달했으며 자산 규모는 66조원에서 304조원으로 5배 가량 급증했다.
◆ 어게인 라응찬…전무후무한 4연임 회장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 |
신한은행장 3연임과 회장직 3연임으로 이미 국내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이번에 4연임에 성공할 경우 자신의 기록을 다시 한 번 깨는 셈이다.
라 회장은 이번 이사회를 앞두고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이 금융회사 전문경영인의 장기 집권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데다 후배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그러나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과 이백순 신한은행장 등 차기 주자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물론 주주들까지 나서서 라 회장을 설득했다.
경기침체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시장 재편 논의까지 급물살을 타는 등 국내 금융시장 환경이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서 라 회장의 리더십이 없이는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후문이다.
라 회장은 금융위기 이후 리딩 컴퍼니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됐다.
이미 금융권 최고경영자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룬 만큼 남은 과제들은 짐으로 느껴질 수 있다. 라 회장이 유종의 미를 거두고 떠난다면 한국 금융계는 좋은 벤치마킹 대상을 하나 더 얻게 되는 셈이다.
◆ 포스트 라응찬 후계구도 '탄탄'
오는 17일 신상훈 사장과 이백순 행장이 취임 1주년을 맞는다. 포스트 라응찬 후보로 손꼽히는 인물들이다.
신상훈 사장은 신한은행장으로 재직하며 조흥은행과의 통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지주회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취임 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은행과 비은행 부문을 잘 아우르며 업계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차기 신한금융 회장으로 신 사장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보고 있다. 능력은 검증됐지만 사장을 맡은 지 1년 밖에 되지 않아 후계 수업을 더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에 라 회장이 4연임이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도 이를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백순 행장도 신한금융의 경영진 양성 코스를 모두 거쳤다. 지난해부터 신한은행을 이끌며 라 회장과 신 사장이 걸었던 길을 따라 가고 있다.
지난해 금융위기의 역풍을 맡으며 그룹 내 실적 1위 자리를 신한카드에 내준 점은 부담이다. 신한금융의 사업라인이 그만큼 탄탄하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계열사 중 맏형으로써 좀 더 분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 사장과 이 행장이 라 회장의 남은 재임 기간 중 충실히 성과를 쌓는다면 신한금융의 후계 구도도 더욱 탄탄해질 전망이다.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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