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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랬을까. 야당이 지적한 대로 남북정상회담이 거의 성사되어 마무리 단계인데, 불발되는 것이 아쉬워서 그랬는가? 국방부 장관이 국회 답변에서 침몰 원인에 대해 ‘(기뢰보다는) 어뢰의 가능성이 조금은 더 실제적이 아닌가 생각 한다’고 답변하자, 청와대는 VIP의 뜻이라며 메모를 보내 제동을 걸었다. 이대통령은 백령도 사고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어뢰에 대한 질문은 않고, “기뢰가 터져도 흔적이 남느냐”고 질문했다. 해군참모총장은 "인양해 봐야 알 수 있다. 어뢰 가능성도 배제 못 한다"고 답했다.
침몰원인에 대해 이대통령이 기뢰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데 반해 해군참모총장은 어뢰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기뢰는 바다 속에 설치하는 지뢰이고, 어뢰는 바다 속의 미사일 같은 무기이다. 침몰원인이 기뢰폭발에 의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기뢰는 가령 최근에 북한이 설치해 놓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예전에 南이나 北이 설치해 놓은 기뢰가 흘러 내려와 폭발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기뢰폭발에 의한 것이라면, 그 기뢰가 누구에 의해 언제 설치해 놓은 기뢰인지 밝혀내기가 그 만큼 어려워 질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고원인을 그만큼 애매하게 결론짓기 쉬울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기뢰의 파편이 수거돼 언제 어느 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확실한 분석을 할 수 있다면 문제는 다르지만 말이다. 하지만 침몰원인이 어뢰에 의한 폭발로 밝혀진다면, 이것은 적의 직접 공격이기 때문에 한국의 입장, 또는 대통령의 입장이 훨씬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은, 공격한 세력에 대해 군사적으로 직접 응징할 것인지, 국제공조를 통해 경제적인 보복(제재)을 해야 할 것인지, 그 점을 국민이 납득할 것인지 등 정치적으로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이 3월 28일 인터넷 판에서 “한국은 지금, 이마에 총알구멍이 있는 시체를 보는 CSI의 수사관과 같다. 이 수사관은 ‘사망원인이 심장마비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권총을 가진 유일한 용의자가 아주 잔인한 암흑가의 보스이기 때문이다”라고 비아냥댔다. 암흑가의 보스 같은 김정일이 무서워 침몰원인을 사실이 아닌 다른 이유로 돌릴 수도 있다는 말로도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영국의 BBC는 “한국 정부가 천안함이 영구미제로 남길 원할지도 모른다.”고도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4월 28일, “북한 잠수함이 중어뢰로 천암함을 공격했다는 것이 군 정보기관의 판단”이라며, 이 기관이 “천안함의 침몰사고 직후 북한군의 소행이 명확하다는 첩보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와 국방부 등에 전달했다”고 군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매체는 또 한미연합사령부는 “북한이 작년 2월부터 국지전보다는 게릴라전 식으로 도발할 가능성을 보여주는 훈련을 강화해 북한군의 동향을 (24시간)정밀 감시해 왔다”고 보도했다.
이런 보도가 사실이라면, 청와대는 거의 실시간으로 군 정보기관의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천안함 침몰사고 초기부터 북한의 개입여부 가능성을 배제하려는 태도를 보였고, 공격무기를 어뢰의 가능성보다는 기뢰 쪽에 무게를 두려했는가? 침몰원인이 북한의 소행으로, 사용무기가 어뢰로 밝혀지면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되기 때문에 그랬는가? 6자회담의 진전문제를 생각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북한을 응징할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였던가?
천암함 사고는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민을 잘살게 하는 일도 중요한 일이지만, 국가의 장래를 위해 어떠한 비전을 가지고 있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케 해주는 불행한 사건이었다.
박승민 편집위원(日 문예춘추 서울특파원) yous11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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