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종원 기자) 예상대로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 침몰 조사 결과와 관련한 대국민 담화에서 단호한 대처를 주문했다.
남북간 교역·교류 중단, 우리 해역의 해상교통로 북한 선박 이용금지, 유엔(UN)안전보장이사회 회부, 자위권발동 등의 북한 책임을 묻기 위한 구체적인 조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하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다.
대신 '대한민국을 공격한 북한의 군사도발', '북한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 등의 표현과 같이 북한정권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
담화문에서 '북한'이라는 단어는 20회 이상 사용됐다.
그동안 이 대통령이 밝힐 담화문에서 김 위원장을 직접 명시할지를 두고 정부 내에서는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최종 원고가 나오는 이날 오전에 김 위원장을 적시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발표 직전 조율과정에서 뺐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직접적인 공격 지시로 천안함 사태가 벌어진 일이라고 미 정보당국 관계자들이 추정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에도 김 국방위원장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 것은 주목할 만 하다.
김 위원장이 그의 셋째 아들인 김정은의 권력승계 기반을 다지고, 대청해전 패전에 대한 보복을 위한 공격이라는 뉴욕타임스의 분석은 김 위원장을 직접 겨냥할 가능성을 키운 보도내용이다.
이는 정부가 천안함 침몰 사건을 계기로 다양한 대북 강경책을 펼치지만 김 위원장이 직접 적시될 경우, 남북관계가 완전히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공격에 대한 북한 정부의 공식사과와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면서도 남북간의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남겨두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북한이 이 대통령의 요구인 공식사과와 관련자 처벌을 할 경우, 김 위원장과 이 대통령은 향후 남북 관계를 전환할 수 있는 추동력을 오히려 얻게 된다.
실제 이 대통령은 담화문에서 "같은 민족으로서 참으로 세계 앞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표현해 북한이 한 민족이며, 결국 통일의 대상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한반도를 더 이상 동북아의 위험지대로 내버려둬선 안 된다"면서 "남북이 이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야 한다"며 북한정권과의 대화 채널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이에 관련해 "(이 대통령이)'언제든 무릎을 맞대고 민족의 장래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는 말씀을 하신적도 있고, 그럴 때마다 김 위원장의 이름을 여러 차례 거명한 바 있다"고 밝혔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는 "김 위원장이 내부적으로 총체적인 책임은 있지만, 직접 지시 여부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국가 수뇌부를 비판하면 관계가 회복되기가 매우 어렵다"며 "김 위원장을 거론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출구전략"이라고 밝혔다.
향후 최고 당국자 간의 결단을 통해서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지 않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평가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 수석연구소장 역시 "김 위원장이 거론되지 않는 등 절제된 반응을 내놨다"고 평가하면서 "만약 김 위원장을 직접 언급했다면 개성공단 폐쇄 등의 또 하나의 극단적인 반응과 북한 정권 내부의 강경파의 입지가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김 위원장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개성공단 특수성을 감안해 검토한다는 내용으로 그친 것에서 북한과의 무대화 원칙과 현상유지 정책이 또 다시 확인됐다"며 "이 정도로는 국방장관이나 정상급 해담을 통해 북한의 사과를 받아내고 재발 방지 약속을 이끌어 내기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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