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에서 희망을 건지다... 그리고리 지차트콥스키 연출 '벚꽃동산'

   
안톤 체홉의 희곡 ‘벚꽃동산’이 6월 13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은 그리고리 지차트콥스키의 연출로 절망 속 희망이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주경제 이정아 기자) “체호프가 말했어. 이야기 속에 권총이 나왔다면 그건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한다고. 이야기 속에 필연성이 없는 소도구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거지. 만일 거기에 권총이 등장했다면 그건 이야기의 어딘가에서 발사될 필요가 있어. 체호프는 쓸데없는 장식을 최대한 걷어낸 소설 쓰기를 좋아했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에 나오는 안톤 체호프에 관한 이야기다. 이외에도 이 소설에는 사할린 섬 이야기 등 그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온다. 1Q84가 인기를 얻으면서 체호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가운데 그의 마지막 희곡 ‘벚꽃동산’이 무대에 올랐다.

연극 벚꽃동산은 쓰러져가는 러시아 봉건 영주의 허위의식과 변화하는 당시 러시아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여지주 라넵스까야 부인은 파리에서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벚꽃동산이 딸린 영지는 그동안의 빚으로 인해 경매에 부처질 위기에 처해 있다. 농노의 아들이지만 상인으로 재산을 모은 로빠힌은 벚꽃동산을 파산에서 구할 방안을 얘기하지만 그녀는 파티를 여는 등 그의 제안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결국 영지는 로빠힌에게 경매로 넘어가게 되고 그녀는 애인이 있는 파리로 떠난다.
 
벚꽃동산(1903)은 갈매기(1896), 바냐 아저씨(1897), 세 자매(1901)와 함께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하나다. 그는 세상을 관찰해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글쓰기 즉 관찰자로서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글쓰기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못난 사람들’ 우리 주위의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벚꽃동산이 팔리고 거리로 내몰리는 가혹한 현실이지만 사람들은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출가 그리고리 지차트콥스키는 희망을 배제하지 않았다. 극의 마지막 장면인 라넵스까야 부인이 파리로 떠나는 모습을 새로운 출발선에 서는 것으로 그렸다. 그는 “안톤 체호프의 벚꽃동산은 우울한 결말이 아니다. 라넵스까야 부인은 힘든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희망을 품고 전진한다. 그녀는 불가능을 극복하는 긍정적이고 역동적이 인물”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차트콥스키는 라넵스까야 부인을 노부인으로 묘사하는 다수의 연출과는 달리, 그녀를 17세의 딸을 둔 40대 중반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부인으로 등장시키는 등 진부한 해석을 깨고 새로운 벚꽃동산을 그린다.

무대나 조명 디자인에서도 상징성을 더한다. 2004년 공연된 연극 ‘갈매기’에서 무대를 깊이있고 입체적으로 연출해 찬사를 받은 에밀 카펠류쉬가 이번에는 세로로 긴 무대를 선택했다. 긴 나무판을 이은 벽과 창문으로 무대를 분할해 하나의 무대를 사용하면서도 2개의 공간으로 활용해 단조로움을 피했다. 또한 세로로 긴 무대를 통해 배우가 옆에 달린 문으로 들어오는 자연스러움과 뒤에서 들어오면 멀리서부터 점점 다가와 입체감을 더했다.

또한 무대는 아무런 소도구 없이 조명과 음향만으로 저택이 되기도 하고, 벚꽃이 만발한 숲속이 되기도 한다. 나무판을 이은 벽 뒤의 조명은 긴 그림자를 남겨 무대 위 인물들의 심리상태를 표현한다. 그러나 창문 뒤로 보이는 무대장치들은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무대가 앞뒤로 길다보니 분산되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벚꽃동산은 6월 13일까지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티켓 3만~6만원. 수요일 전석 3만5000원. 문의 58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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