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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 |
V3는 1988년 6월 당시 의대 박사 과정에 있던 안철수 현 KAIST 석좌교수가 세계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인 ‘브레인’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한 것이다. 안철수 박사는 자신의 컴퓨터에 감염된 브레인 바이러스를 컴퓨터 언어로 치료한 후 친구의 권유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치료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백신(Vaccine)’이라 이름 붙였다. 안티바이러스 소프트웨어를 백신 소프트웨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이때부터로, 고유 명사가 제품 전체를 의미하는 보통 명사로 확장된 경우이다.
V3는 척박한 국내 소프트웨어 환경에서 22년 간 지속돼온,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서 탄생한 가장 오래된 아시아 대표 보안 소프트웨어이기도 하다. 미국 보안 기업들이 세계 보안 시장 판도를 좌우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로컬) 시장을 50% 이상의 시장점유율로 지키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존재이다.
또한 V3는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되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국내 유일의 보안 소프트웨어이다. 국내 거의 모든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가 핵심 원천 기술인 안티바이러스 엔진을 외국 보안 업체에서 들여와 제공하는 안타가운 상황에서 업계 맏형으로서 본보기를 보여준다고 할 만하다.
아울러 V3는 스마트폰용 보안 소프트웨어, 온라인 금융보안 서비스, 웹 보안 서비스로 확장되어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해나가고 있다. 아울러 끊임없는 혁신으로 최신 IT 환경에 최적화한 성능과 기능을 제공한다. 엔진 경량화로 세계 보안 소프트웨어 중 가장 빠르고 가벼운 성능을 제공하며, 웹 환경의 발달로 클라우드 보안 서비스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가운데 이 분야를 선도해나가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비서양권 업체 중 최다 국제 보안 인증을 보유했으며, 정부 선정 ‘세계일류상품’으로 일본, 중국, 동남아, 중남미 등 해외 각국에 자체 브랜드로 수출되는 거의 유일한 소프트웨어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V3가 이루어낸 성과에 기뻐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어려움에 처한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함께 성장해나갈 동반자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 어디를 돌아다녀봐도 우리만큼 IT를 산업과 사회문화 속에 적용한 나라는 흔치 않다. 그러나 하드웨어는 좋아진 반면 IT를 문화 속에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 이를테면 소프트웨어나 콘텐츠 측면에서 많이 부족하다.
최근의 스마트폰 열풍의 중심에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보유한 애플과 구글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통신비와 하드웨어 단가가 급속도로 떨어지는 추세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는 IT 산업의 주도권이 소프트웨어로 넘어가고 있음을, 통신과 하드웨어에 기반한 사업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웅변한다. 따라서 창의적인 소프트웨어와 서비스로 얼마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느냐가 점점 중요해진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하드웨어적 사고에 기반해 이룩한 과거의 성장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화 과정이 그러했고, 산업적 성장도 그러하다. 분명 이것은 한국인이 만들어 낸 자랑스런 역사다. 그러나, 앞으로는 단결과 일체감을 넘어서 소프트웨어적 사고를 기반으로 유연성과 합리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역사적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우리에게 스마트폰 혁명은 어려운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선진국이 되는 기준은 소프트웨어의 가치를 우리 삶 속에 자리잡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다양성과 개성이 존중되는 문화 속에서 꽃을 피울 수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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