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아틀리에①] "철학과 시대정신을 작품에 반영해야"

(아주경제 이미호 기자) 화가에게 아틀리에는 어떤 곳일까. 남들처럼 밥 먹고 잠자고 사랑하는 일상(日常)의 공간이자 사색하며 꿈을 꾸는 이상(理想)의 공간. 복잡한 현실을 떠나 영혼을 치유받는 장소. 하지만 때론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며 한없이 침전(沈澱)하는 곳. 그래서 다시 비상(飛上)도 꿈꿔 볼 수 있는 곳. 여류 화가에겐 침실보다도 더 보여주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공간, 아틀리에를 찾았다.

[화가의 아틀리에①] "시대정신을 반영하는게 화가가 할 일"

"많이 지저분하죠? 정리 좀 해야 하는데, 원래 작업하다보면 깔끔한 것과는 거리가 멀게 되죠(웃음).아틀리에는 여기저기 손 닿는데마다 물감이 있어서 마구 어질러놓기 편한 곳이어야 해요."

기자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수줍어하며 주섬주섬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서울 청담동 주택가에 자리한 서우 화백의 아틀리에는 작지만 아담하고 다채로웠다. 원색의 컬러풀한 작품들과 미술도구들은 심지어 발랄한 인상을 줬다. 그의 아틀리에는 "그림 그리는 작업 자체를 즐기고 싶다"는 작가의 철학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제38회 한국여류화가회 출품작 '부드러운 힘' 앞에서 작품의미를 설명하는 서우 화백.

유방을 모티브로 한 그의 초기 작품은 대부분 반추상이었다. 1999년작 '생명의 바다'는 하늘 뿐만 아니라 바다의 물결 자체도 여성의 가슴에 비유했다. 모성애와 같은 동양미는 이달 초 제38회 한국여류화가전에 출품한 '부드러운 힘'에서도 여실히 반영됐다. 작품 속 등장하는 여인의 실루엣은 관음보살상의 자태를 닮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반추상에서 추상으로 기울었죠. 2004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아트서울展에 출품한 '오름'시리즈 등이 그 예죠. 그런데 추상을 그리다 보면 너무 머리가 아픈거에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스스로가 감당이 안돼 '즐길 수 있는 그림을 그리자'라고 생각했죠."

서 화백은 작업 과정 자체를 즐기다보면 자연스럽게 화가의 철학이 작품에 스며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 화가의 할 일이라는 것.

"어떻게 하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2010년의 모습을 반영할까 고민합니다. 정치·경제·사회 등 트렌드를 알아야 예술가들이 문화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철학과 시대정신을 작품에 담아야 해요.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건 바로 경험이죠. 비무장지대를 직접 가보고 제3의 동굴도 체험하면서 '부드러운 힘'의 모티브를 얻었어요."

분홍빛의 무궁화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드러운 힘'은 오른쪽에는 한국전쟁을 연상케하는 탱크와 난민, 왼쪽에는 북에 있어 만날 수 없는 약혼자를 기다리는 신부를 담았다. 현재 작업중인 '천안함'도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천안함 사건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반영했다.

"화가로서 '나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나'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던집니다. 삭막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만남의 순간'마다 의미를 부여하고자 최근 '100인의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지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화폭에 담아 아틀리에를 채울꺼에요."

이처럼 아틀리에는 그가 현실문제를 보고 해석하고 반영하는 통로인 셈이다.

"아틀리에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작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구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혼의 보따리를 풀어내는 유일한 장소기도 하죠. 뿐만 아니라 화가 친구들과 함께 와인도 마시고 미술 관련 이야기도 하고 또 서로를 격려하고 질투하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는 지금 작업중인 '천안함'을 마무리하고 오는 9월 22~28일 인사동 갤러리 수에서 강남미술가협회전에 참가할 예정이다. 또 오는 11월 인사동 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

△ 서우 화백은···
1964년 부산 출생. 100여회 국내·국외 그룹전 참가. 개인전 개최(2006  KBS갤러리, 2005  스위스 취리히, 2004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이오스갤러리, 2000  일본 후쿠오카 아시아 뮤지움, 1999  대구 문화회관, 1995  관훈 갤러리, 1990  미국 샌프란시스코 제펜센터 갤러리, 1989  미국 샌프란시스코 호리엔 갤러리). 현재 한국미술협회, 한국여류화가협회 회원, 강남미술가협회 홍보이사, 서아트 화실 운영, 신사문화센터 영어미술강사, 단국대 파스텔 스케치화 교수.

mihole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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