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도광양회(韜光襄晦·재능이나 힘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가 '유소작위('有所作爲·해야할 일은 한다)로 가는 시금석이 아니겠나?"
서상민 동아시아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부주석과 중국정부의 '띵룬(定論·정론)' 입장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서 연구원은 "중국이 동아시아 국가질서와 세력균형을 위해 도광양회의 시대에서 벗어난 시점에서, 시 부주석이 말한 '정의로운 전쟁'이 맞냐 틀리냐에 상관없이 당시 중공군의 참전시기를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시 중국 입장에선 중국 국가 존립이 달린 시점에 미국이 끼어들었고 명분상 정의로운 전쟁이 아니라면 전쟁에 끼어들지 못할 만큼의 어려운 시기였기에 중국의 이런 입장은 그들 입장에선 명분이 없지 않겠냐"며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이미 참전한 전쟁이기에 한국전쟁이 남침이 아니라 해도 그것을 인정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겠나" 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지만 한국전쟁과 관련해 중국이 한국이 아닌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강력히 도전하는 시점을 맞이한 것"이라며 중국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정확한 인지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반면 베이징 외교가의 한 전문가는 "미군이 압록강을 넘어 중국까지 공격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중국이 '미국침략'을 거론하는 것은 근거가 약하다"며 "중국이 한국전쟁 참전을 합리화하기 위해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해석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가 만난 중국정치 전문가둘운 이번 논란에서 주목할 점은 이번 시 부주석의 발언이 미국을 겨냥한 국제사회 세력균형 변화가능성의 신호탄 이라는 것이다.
◆'띵룬(定論·정론)이 무엇인가?
'외교통상부 한 관계자는 "중국정부가 말한 '띵룬(定論·정론)'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나온 대부분의 언론 보도와 정부관계자들 반응이 현재의 한·중 외교간극과 한·중 외교 현주소의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매체나 정부기관에서는 '띵룬(定論)'을 한자어 그래도 '정해진 이론' 쯤으로 해석했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중국정부는 시 부주석의 발언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띵룬'이라고 얘기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한국에선 중국정부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비춰졌다"며 "중국을 웬만큼 아는 사람들은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0년 전 장쩌민(江澤民)당시 중국 국가주석 시대에도 중국은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참전 50주년 좌담회'에서 이번 시 부주석과 같은 발언을 했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50·60주년 행사를 거대하게 치르는데 당시 행사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의 주최로 열렸고 정치국 상무위원 등이 참석한 상당한 규모의 기념행사였다.
당시에는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은 물론이고 훨씬 더 심각한 '승리의 깃발을 높이든...'등의 군중대회와 유사한 멘트가 즐비했다.
중국 사회과학원의 한 교수는 "중국 정부가 한국전쟁(항미원조전쟁)에 대해 그동안 주장해온 입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정해져 내려온 이론'이다. 이번에 중국 정부가 '시 부주석의 발언은 중국의 '띵룬'이라고 한 것도 오래전부터 중국정부가 마치 문서해 놓은 것을 시 부주석이 읽어내려간 것에 지나지 않는 즉, 시진핑의 역사관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도 이에 대해 "10년이 지난 현재 시 부주석의 이 발언이 갖는 의미는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참석자 중 소위말하는 시진핑 라인은 거의 없었고 규모나 분위기도 많이 다운됐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국기자는 "이는 10년 동안 '항미원조전쟁'을 바라보는 중국의 시각이 예전같지 않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또한 역행하는 한·중관계로만 해석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달라진 것이 너무 많지 않나"고 되물었다.
◆왜 한·중 문제를 논의할때 북·중 관계를 함께 거론하나?
중국의 한 소식통은 "한·중문제와 북·중관계를 일직선상에 놓고 보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은 한국과 북한 문제를 함께 보지 않는다"며 또한 항미원조전쟁(한국전쟁)을 이야기할 때는 중·미 관계를 겨냥해 이야기 하는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반대로 한국이 한국전쟁과 관련, 한·미 행사를 할때 중국이 어떻게 이 부분을 해석할지는 이번 한국이 시 부주석 발언 논란과 같은 맥락의 문제"라고 덧 붙였다.
서상민 선임 연구원은 "시진핑은 장쩌민 등 상하이방을 지지기반으로 한 인물이기에 원로 세대들이 보여주려던 '중국의 힘'을 국제사회에 특히 미국에 국내 정치로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이번 발언 뿐 아니라 중국이 앞으로도 정치적 공세 주장을 또 펼친다면 오는 2012년 중국 5세대 지도부 출범 후 국제사회관계에 있어서의 중국의 전략 방향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정의로운 전쟁'인지 아닌지에 설전을 벌이기 보다 외교부와 정부 당국자들이 단안적이고 근시안적 시각을 버리고 한·중외교를 위해 그에 맞는 대응을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외교부 관계자도 "양국의 이해와 소통 증진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과거 역사를 훝어보지 않고 확대해석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며 한·중관계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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