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울트라소닉 블라인드 안테나, C.U.B.A. 깃발 든 머리 없는 태엽 인어인형 ⓒ2010 박화영 |
쿠바, 울트라소닉 블라인드 안테나 1전시실, 마트료시카 ⓒ2010 박화영 |
CUBA는 ‘Cuba, Ultrasonic, Blind Antenna’를 모아놓은 말이다. 이번 전시는 성곡미술관이 올해 초 ‘김영헌:Elecronic Nostalgia_Broken Dream’전에 이어 중견·중진작가를 집중 조망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김진섭 큐레이터는 “신진작가를 후원하는 프로그램과 갤러리를 중심으로 한 유명작가 후원 프로그램은 많다. 하지만 정작 미술계의 허리 구실을 하는 중견작가에 대한 지원은 미흡한 편이라 이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작가 박화영은 2005년 동경에서 멀티미디어 공연 연출을 맡는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박화영은 이번 전시에서 비디오와 오디오 설치를 설치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오브제 작업을 하는 등 이미지와 텍스트가 비선형적으로 교차되는 복합 미디어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CUBA는 이 전시회에서 사고의 주체성을 회복해 나가는 상처 입은 작은 영혼이다. 아프리카에서는 태어난 요일에 따라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따르면 CUBA는 수요일에 태어난 딸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이번 전시회는 쿠바의 ‘자기혁명’에 관한 치열한 외침이자 고백이다. 국가 ‘쿠바’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전시는 아니지만 ‘체게바라’로 대변되는 혁명의 이미지를 전시회에 심었다. CUBA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말미암아 억눌림 당하는 마이너리티로서 제 나름의 혁명을 꿈꾸는 공간이자 인물이다.
박화영은 과거 식민지 국가 쿠바의 이미지를 차용했다. “스페인은 쿠바 지배 당시 북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해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국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형성됐다”라며 “현대사회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본과 다른 사람의 시선 등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강남 8학군에 학생이 몰린다. 생각이 지배당하는 현실을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Bienvenido a Cuba(쿠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박힌 가상 국가 쿠바로 입장한다. 작가가 혁명의 아지트라 부른 ‘CUBA HUT’에서 직접 연기해 찍은 영상을 28분 남짓의 필름에 담았다. 작가가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컵이 스크린 앞에 나란히 전시돼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2부 ‘Número incorreto’ 분위기는 상당히 어둡다. 자동응답전화에 잘못 전달된 타인의 메시지나 음성이 주된 모티브다. 과거 자신의 쓰던 자동응답기에 실수로 남겨진 메시지, 발신 불명의 음성으로만 남은 메시지를 서로 이어 붙여 작가가 경험한 불편한 불통의 감정을 표현했다. ‘소통’은 여기서도 화두다.
3부에서는 ‘혁명 만세, 바다가 없는 바다의 이야기’를 체험한다. 쿠바 체험을 마친 관객에게 작은 바다에 직접 한번 들어와 볼 것을 권하는 공간이다. 안락한 소파에 앉아 작가가 직접 차린 출판사 ‘책빵집’에서 펴낸 시집과 책 ‘CUBA‘를 읽을 수 있다. “1부에서 혁명을 감지하는 것으로 시작해 3부에서는 어느덧 혁명에 동참하게 되는 셈”이라고 김진섭 큐레이터는 설명했다. 이 공간의 주인공인 ‘우체통’과 ‘숫자’도 놓쳐선 안 된다. 현대 사회에서 어느덧 퇴물처럼 취급받고 있는 우체통은 작품 곳곳에서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 놓여져 있다. 마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연상시키는 거대 빌딩 옆에 박힌 커다란 숫자는 하나의 거대 분류시스템에 의해 단순히 수치화 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현실을 비판했다.
박화영은 “이 전시가 무섭게 느껴지든,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든 혹은 그 어떠한 개인의 방식으로 해석을 하든 그건 관객 고유의 몫이다. 다만 관객이 자기 안의 혁명성, 즉 CUBA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느끼는 동지가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전했다.
오브제와 영상작업, 그림, 시집 발간 등 일 인 다역을 거뜬히 해내고 있는 작가는 ‘철의 여인’이 아닐까. 작가는 “거의 모든 작업을 혼자 해내고 있기 때문에 사실 놓치는 부분도 더러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에도 제한받지 않고 온건히 순수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은 큰 장점”이라며 혼자 이렇게 많은 역할을 소화하는 것은 자신이 단지 옹벽에 갇혀 사회 저항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activist(운동가)한 요소도 띄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문의 02-737-765.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