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 북서방 72마일 해상에서 중국 어선인 요영호(63t급)가 불법어로를 단속중이던 우리 해경 경비함(3000t급)과 충돌해 선원 2명이 사망하고 실종된 사건이 발생한 직후 서울에서 한중 당국간 교섭이 진행돼왔으나 중국이 21일 장위(姜瑜) 외교부 대변인의 정례브리핑을 통해 한국을 공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외교 갈등 조짐이 보였던 민감한 시기에 중국이 돌연 공개적 여론전에 나서면서 대응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번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장위(姜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1일 정례브리핑에서 문제의 침몰 어선은 불법조업을 하지도 않았다면서 “침몰사고와 관련해 책임자 처벌은 물론 인명·재산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일방적인 주장을 폈다.
이에 한국 정부 당국자는 중국 어선들이 불법 조업을 했느냐 여부와 어떤 경위로 사고가 발생했는 지를 따지는 게 선행돼야 하지만 중국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22일“중국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며 “중국 정부와 합동조사를 진행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5년간 우리 측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불법조업을 하다 적발된 중국 어선은 무려 2190여척에 달한다.
서해에서 중국 어선의 불법어로가 횡행하는 탓에 이번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지금까지 한중 양국이 당국 차원에서 사고 경위에 대한 충분한 의견 교환을 거치고 나서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왔다는 점에서 이번 장 대변인의 여론전은 의외란 반응이다.
핵심쟁점은 양국간 EEZ가 겹치는‘잠정조치수역’에서 해경의 단속 수위가 적절했느냐는 문제로 모아진다.
외교부에 따르면 해경은 한국 측 EEZ 내 15해리 안에서 불법조업을 하는 것으로 의심되던 15척 가량으로 이뤄진 중국 선단에 정선명령을 내렸지만 중국 어선들은 이를 무시하고‘잠정조치수역’으로 도주했다.
이후 해경은‘잠정조치수역’에서 요영호와 같은 회사 소속으로 추정되는 어선에 승선해 조사를 하려고 했지만 선원들이 극렬히 저항했고 이 과정에서 해경의 검색작업을 방해하던 요영호가 경비함의 측면을 들이받고 전복됐다.
이와 관련해 장위 대변인은“한중 양국의 어업협정에 따르면 양국 어선은 모두 이 (사고) 해역에 들어갈 수 있고 양국은 자국 어선에 대한 법 집행만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잠정조치수역’에서는 한중 모두 자국 어선에 대해서만 단속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한국은 해경이 EEZ 내에서 정선명령을 어기고 도주하는 중국 어선을‘잠정조치수역’까지 추적한 것은 국제법상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당국자는“요영호는 해경 경비함에 직접 부딪혀서 전복한 것이지, 우리 경찰이 물리력을 가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EEZ는 보통 200해리(370㎞)까지의 수역에 대해 천연자원의 탐사.개발을 비롯한 주권적 권리를 인정하는 유엔(UN) 해양법상의 개념으로 타국 어선이 이 해역에서 조업하려면 연안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2001년 6월30일 발효된 한·중어업협정에도 양국은 상대국 EEZ에서 조업할 수 있지만 상대국이 입어허가증을 발급한 국민 및 어선만 해당한다고 규정돼 있다.
전복된 요영호의 경우 한국 정부로부터 조업 허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단순한 영사사건으로 규정하고 자칫 외교적 마찰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면서 차분한 대응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섣부른 대응으로 지난 9월 7일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尖閣>열도) 부근 해상에서 중국 어선이 일본 해상 경비정을 들이받아 선장이 억류되면서 조성된 중ㆍ일 갈등과 같은 대형 사건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면서도 시시비비를 분명하게 가린다는 게 우리 정부의 방침이라는 전언이다.
◇中어선 “자국연안 고기 씨 말라, ‘한국가야 돈 번다’”
이처럼 불법조업이 기승을 부리는 것은 중국 측 어장은 급속한 공업화로 말미암아 황폐화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 연안의 어족자원은 상대적으로 풍부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어선의 난립과 남획 등으로 연안 고기가 씨가 마른 상태로, 사실상 어로행위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중국 어선들은 우리 해경의 나포위험을 무릅쓰고 불법어로 행위를 강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산둥반도의 칭다오와 웨이하이, 스다오 등지 어선의 불법포획 행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또한, 중국 정부의 묵인에다 해경에 검거돼 내는 담보금보다 불법조업으로 얻는 수익이 더 많은 것도 한몫 하고 있다.
또 대개 중국 어선이 불법조업을 하다 해경에 나포되면 한 척에 수백만 원씩을 내는데 이 담보금의 액수가 적은 것도 불법조업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군산해경 관계자는 “중국 동북부 연안 어민들 사이에는 한국 영해로 가야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면서 “이들 어선에 대한 중국 정부의 단속이 미온적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