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은행 금융비리 사건은 금융권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비리가 단 하나의 케이스에 응축된 일종의 '종합비리세트'였다.
사건의 진원지인 경남은행을 비롯해 종합금융사 등 제2금융권, 금융브로커,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 사학연금관리공단, 건설근로자공제회 등이 난마처럼 얽혀 빚어낸 4천억원대 초대형 비리라는 점에서 전례를 찾기가 어렵다.
비리의 가장 큰 줄기는 신탁업무를 담당하던 경남은행 장모(44) 부장과 조모(39) 과장 등 간부 2명의 금전 욕심과 이에 따른 업무상 일탈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2008년 10월 고객이 맡긴 신탁자금을 멋대로 비상장회사의 지분인수 등에 투자했다가 입은 손실로 대형 금융사고가 눈앞에 닥치자 제2금융권 대출로 땜질 처방에 나섰다.
자신들이 세운 유령회사와 자금관리를 맡은 업체 등을 내세워 경남은행의 지급보증서와 신탁자금 관련 확약서 등을 위조해 저축은행 등에서 거액의 대출을 성사시킨 것이다.
이후 지난 4월까지 대출금으로 기존의 부실을 돌려막기식으로 연장하거나 코스닥 상장사 인수, 리조트 사업 투자 등으로 손실 만회를 시도했지만 거듭된 투자 실패와 누적된 대출이자 등으로 부실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됐다.
이런 악순환 속에 경남은행이 부담한 보증책임 액수는 3천262억원에 달했다.
장 부장은 이외에도 M&A 전문 변호사, 종금사 직원과 공모해 사기대출로 운수업체를 인수한 뒤 거액의 회삿돈을 빼내 멀쩡한 회사를 '깡통'으로 전락시키고 사학연금관리공단 간부에게는 수백억원의 투자를 대가로 뇌물을 건네기도 했다.
이 사건과는 별개로 2008년 320만명을 회원으로 두고 1조원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는 건설근로자공제회 당시 이사장은 1억원이 넘는 뒷돈을 받고 경남은행을 통해 부실 골프장 인수에 300억원을 투자해 근로자들의 퇴직금 지급 자금을 까먹었다.
이 과정에서 금융브로커들은 장 부장 등에게 제2금융권 대출을 알선해주고 알선료 명목으로 모두 19억여원을 받아챙겨 잇속을 차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금융비리 규모는 30건에 4천136억원에 이르며, 돌려막기로 상환된 대출 원리금 2천400억여원을 빼더라도 약 2천억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이는 금융기관 직원의 개인 비리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것으로 파악됐다.
문제는 한 번에 수백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대출하는 과정에서 은행 내부의 감시ㆍ감독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남은행의 신탁 업무 담당 직원은 장 부장과 조 과장 2명뿐인데 이들에게 장기간 업무를 맡기면서 전권을 주고서도 어떤 식의 통제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출지급보증서 등을 발급하는데 필요한 은행장의 인감증명서를 마음대로 꺼내쓰며 상습적으로 은행 서류를 위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은행 신탁업무는 은행이 고객의 위탁자금을 운용하되 그에 따른 손실은 위탁자가 부담하는 구조여서 자체 감독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아울러 금융감독 당국도 최근 수차례 대형 금융사고가 터졌음에도 경남은행이 자진신고할 때까지 이런 비리를 모르고 있었다는 점에서 감독 행정의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서민들 대상의 소액대출 심사는 엄격한데 반해 수백억원의 대출 과정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허술하게 이뤄졌다"며 "은행의 전반적인 대출 시스템을 점검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합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