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헌규의 중국이야기 11-2> 공산당 정권이 만들어낸‘소작농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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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3-14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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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 농촌이란 얼굴의 또 하나의 중국

중국의 도시 주민 가처분 소득 증가는 농촌 주민의 순수입 증가속도 보다 훨씬 빠르다. 이로인해 도농간의 소득 격차는 갈수록 그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언젠가 샨시(陝西)성의 한 농촌에서 만난 농민은 수입가운데 농사 수입보다 시안과 베이징에 다궁(打工 일)하러 나간 가족들이 보내오는 수입이 더 많다고 소개했다.

이 농부는 농업세는 폐지된거나 마찬가지인데 비료 농약 종자대 등 농업 생산재료가격이 크게 올라 정부가 농민한데 인심쓴다고 해놓고는 결국 눈가리고 아옹한 격이라고 꼬집었다.

시짱(西藏 티베트)과 타이완(台灣) 문제를 빼놓고 중국 공산당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현안은 누가 뭐래도 농촌 문제다. 농촌 문제는 중국 의 골칫거리인 지역및 계층간 빈부 양극화를 모두 포괄한 사안이다.

농촌인구가 7억명이라고 하지만 도시에 나간 농민공까지 포함하면 8억~9억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농촌 인구의 상당수가 빈곤 계층에 속해있고 도시 농민공들도 마찬가지 처지다.

중국은 이들을 하루빨리 도시인으로 편입시키고 기초생활이 보장되도록 기본적인 삶의 수준을 개선해줘야 하는데 그게 생각처럼 쉽지않다.

고성장 드라이브는 농촌을 제쳐둔채 도시만 발전시키고 도시인들만 잘살게 만들었다. 이제 경제가 발전하고 의식수준이 높아지면서 농민과 같은 취약층들이 이를 억울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자신들이 늘 찬밥 신세라는 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농민과 농촌의 지지로 공산 혁명에 성공했으나 농민에게 땅을 나눠준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돌아온 것은 멸시와 차별과 냉대뿐이었다.

농민들은 개혁개방을 앞세운 '덩샤오핑의 혁명'으로 확실한 내 땅을 갖는 듯 했으나 토지 문서는 다시 개발상 등 신흥 자본가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있다. 농민공들은 도시에 호적이 없고 고향에 땅이 없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했다.

“농촌문제 해결을 위한 도시화정책이 오히려 위협이 되고 있어요.” 지린(吉林)성 한 농촌마을 촌장은 "도시화 과정에서 어떤 농민은 강제수용 등으로 어떨결에 땅을 뺏기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베이징에서 한 서방 외교관과“중국 농촌의 미래”에 관해 얘기를 나눈적이 있었다.

“문혁의 공포에 질린 60~70대 연령의 세대들이 퇴장하면 중국 농촌도 많이 변할 거예요. ”

그는 중국 농촌 앞날에 대해 의외의 얘기를 했다.

“시위와 같은 사회적 소요가 발생한다는 뜻입니까? ”

“농촌이 왜 가난해야 하는지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할 것이고 지방 관리들이 일삼는 부정 부패에 대한 불만도 임계점에 달할 겁니다.”

“그전에 중국 농촌이 지금보다 더 풍요로워질 가능성은 없나요? ”

“다소 나아지겠지만 획기적 개선은 힘들 겁니다. 무엇보다 토지가 농촌의 신흥 자본가에 집중되는 현상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는 대화 말미에 “중국의 농민과 토지소유 문제는 수천년 역사에 있어 모든 왕조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딜레마였다”며 “농민과 토지문제로 정권의 흥망이 좌우됐던 적도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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