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 조용성 특파원) 2002년 임종을 앞둔 시중쉰(習仲勛) 전 국무원 부총리는 아들인 시진핑(習近平)에게 실사구시(實事求是)와 후도관용(厚道寬容) 등 두가지를 당부했다. 일을 할때는 실용적인 입장에서 대처하고, 사람을 대할때는 후덕한 자세로 관용을 베풀라는 것이었다. 시진핑은 이에 대해 “처한 환경과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 제약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실사구시'를 100% 관철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후도관용'은 반드시 100% 실행에 옮기겠습니다”고 했다.
후도관용의 자세는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말이었고, 이는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철학이었다. 이같은 후도관용의 자세는 오랜기간 쌓이고 쌓여 지난 2007년 빛을 발했다. 당시 중앙위원으로 상하이시 서기를 맡고 있던 시진핑은 그해 10월 17대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이라는 중간단계를 뛰어넘어 일거에 정치국 상무위원인 국가부주석(공산당 서열 6위)에 올라서며 차기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예약했다.
차기 지도자 후보군에서 항상 리커창(李克强) 부총리에게 가려져있던 시진핑이었기에 그가 차기 총서기라는 사실에, 더욱이 리커창(공산당 서열 7위)보다 앞선 서열로 상무위원에 진입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하지만 현재 중국에 필요한 것은 시진핑이 일생을 통해 펼쳐온 조화의 리더십과 청렴한 모습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진핑은 지난해 군사위원회 부주석직에 올라서며 명실공히 차기 국가주석, 공산당 총서기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시진핑은 2012년 10월에 열릴 제18대 당대회에서 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후 이듬해 3월 국가주석에 등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2022년까지 10년동안을 이미 세계무대에 G2로 우뚝선 중국의 최고지도자로서 행보를 하게 된다.
◆인화의 리더십, 13억 중국을 하나로
후덕한 외모에서 풍기듯 그는 겸손하며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매사 화합를 강조한다.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도 진시황(秦始皇), 한무제(漢武帝), 당태종(唐太宗), 칭기즈칸 같은 발군의 역량을 소유한 인물들이 아니다. 오히려 유방(劉邦)이나 유비(劉備)처럼 인재들을 모아 하나로 단결시키는 화합형 리더를 존경하는 편이다.
또한 그는 항상 아래직원들에게 “인화단결에 성공하면 일은 항상 비교적 잘할 수 있다. 하지만 인화단결에 실패하면 일은 항상 그르치게 된다”고 강조한다. “지도자란 구성원간의 인화를 만들어내는 데 에너지의 70%를 써야 한다”는 말도 그의 지론 중 하나다. 실제 그의 정치이력상 누군가와 갈등을 빚었거나 마찰음을 냈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인화를 강조하며, 또 인화에 능한 그의 자질은 향후 지도자로서의 행보에도 그대로 관통할 것으로 보여진다. 때문에 그는 상하이방, 태자당, 공청단파 등 중국의 대표적인 세 정치집단의 갈등을 최소화해 13억 중국을 하나로 단결시켜 정치적 사회적 안정을 이뤄나갈 것이라는 관측이다.
시 부주석은 현재도 상하이방, 태자당, 공청단파의 고른 지지를 얻고 있다. 일단 그는 시중쉰 전 부총리의 아들로 태자당이다. 하지만 그동안 태자당과의 일정한 거리를 뒀고, 겸손하고 청렴한 자세를 견지해 다른 태자당 지도자들과 달리 중국 국민들의 거부감이 없고 신뢰도가 높다.
또한 상하이방 소속이 아니면서도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과 쩡칭홍(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으로 대표되는 상하이방의 지원을 얻고 있다. 특히 쩡칭홍 전 부주석이 2007년 9월 막후에서 국가원로들의 의견을 주도해 시진핑을 적극 천거하면서 국가부주석에 올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청단파와의 관계 역시 무난하다. 그는 공청단이 아니면서도 공청단의 수장격인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신뢰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후 주석은 그의 정치적 스승이자 멘토였던 후야오방 전 총서기와 함께 마지막까지 덩샤오핑에 맞섰던 시중쉰의 품격을 흠모해 왔으며, 이는 그의 아들인 시진핑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후 주석이 제창한 과학발전관, 화해사회론을 시 부주석이 적극 지지해 왔다는 점도 후 주석의 호감을 샀다. 리커창, 리위안차오(李源潮), 왕양(王洋) 등 그 밖의 공청단파 리더들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다.
군부의 지지도 얻고 있다. 그는 1979년 당시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겸 비서장이었던 겅뱌오(耿飇)의 비서로 3년간 일한 경력이 있다. 때문에 군내 지인과 지지자가 많다. 해군 소장인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을 통해 알게된 군부인사도 많다. 차세대 지도자 가운데 이런 군 경력을 가진 사람은 시 부주석뿐이다.
◆胡의 ‘과학발전관’ ‘화해사회’ 이어받는다
대부분의 지도자는 전임자와의 차별을 위해 가능한 한 전임자의 성과를 깎아내리고 새로운 노선과 정책을 펼치려 한다. 하지만 시진핑은 그동안 가능한 한 전임자의 정책 노선이나 추진 과제를 그대로 이어받아왔다. 이에 후 주석의 정책노선을 그대로 이어받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실제 1999년 푸젠(福建)성의 대리성장으로 임명됐을 때 “업무란 릴레이와 같아서 바통을 잘 이어받아 잘 들고 달려야 한다”며 업무의 연속성을 강조했다.
게다가 그는 후 주석의 정책방향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과거 후 주석이 성장일변도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환경파괴, 빈부격차 등의 문제가 야기됐다며 과학발전관, 화해사회, 인본주의 등을 제창하자 당시 저장(浙江)성 서기였던 시 부주석은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그 역시 저장성에 실업, 사회보장제도 등에 모순이 발생하고 있다고 여겼으며 저장성을 과학발전관의 모범지역으로 만들었다. 또한 ‘국부’가 아닌 ‘민부’에 초점을 맞춰 여러 가지 민생제도들을 개선했다.

◆정치개혁 단행할 가능성도
중국 학계에서는 시진핑이 향후 정치개혁을 단행할 가능성이 조심스레 이야기되고 있다. 텐안먼(天安門)사태의 아픈 경험이 있는 중국에게 정치개혁은 상당히 민감한 이슈다. 또한 현재의 집단지도체제 하에서의 정치개혁은 ‘피’를 부를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때문에 중국의 정치개혁은 마오쩌둥(毛澤東)이나 덩샤오핑(鄧小平)같이 전권을 장악한 ‘오너’급의 지도자라야 단행할 수 있으며, 장쩌민이나 후진타오같은 ‘CEO’급 지도자는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다.
시 부주석의 정치개혁 가능성은 두가지측면에서 비롯된다. 우선 그에게 정치개혁의 의지가 읽힌다는 점이다. 홍콩 왕보(旺報)는 “시진핑은 독서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으로 정치개혁에 대한 분명한 주관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도 예상하며 그 근거로 시진핑이 지난해 7월 중국 공산당 간부들에게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水能載舟 亦能覆舟)”고 말한 사실을 들었다.
두 번째는 그가 또한 장쩌민 전 주석과 후진타오 현 주석의 지원하에 막강한 정치력을 확보할 것이라는 예상에서다. 장 전 주석의 임기 대부분이 덩샤오핑의 영향권 하에 있었으며, 후 주석 역시 지난 임기동안 장쩌민으로 대표되는 상하이방의 견제를 줄곧 받아왔던 것과는 양상이 다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시 부주석의 집권 후반기로 넘어가는 2017년 이후에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시 부주석이 어쩌면 후 주석보다 더 폭넓은 당내 지지를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시 부주석은 새로운 구상을 실험할 수 있는 보다 많은 재량권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민간기업 육성 급물살 탈 듯
그는 푸젠성과 저장성, 상하이 등 시장경제가 발달한 연해지역에서 22년을 근무하며 경제발전을 주도해왔다. 특히 국영기업보다는 민간기업의 육성에 많은 노력을 할애해온 행보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02년 저장성 당 서기로 부임하자마자 그 지역의 유일한 자동차메이커인 지리(吉利)자동차를 방문했다. 시 부주석은 “우리가 지리자동차 같은 회사를 강력히 지원하지 않는다면 어느 회사를 지원하겠는가”라고 말하며 적극 지원했고 지리차는 2009년 포드자동차로부터 볼보를 인수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중국 전자상거래의 대표기업인 알리바바 역시 그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민간기업 중 하나다.
그는 저장성 서기를 역임할 때 “민간기업은 저장성 경제를 떠받치고 있으며, 개혁개방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고, 공업화와 도시화를 주도하고 있으며, 인민들에게 막대한 수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며 민간기업 육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국제외교, 실용과 공존 추구
시진핑시대의 중국외교는 실용주의의 기반위에 특유의 화합 리더십이 함께 어우러질 전망이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회복을 견인하며 G2로 부상한 국력에 걸맞게 외교현안에 따라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지난해 댜오위다오(釣魚島)와 남중국해 갈등에서 보인 것처럼 자국의 이익에 반한다는 판단이 서면 단호한 대응을 펼쳐 왔다. 이같은 자세는 차기 지도부에서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인화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시 부주석은 세계 각국의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담대하게 공존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국제문제에 대한 포용적 자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총책임자 시절의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서구 선진국들은 중국의 인권문제와, 신장(新疆) 독립문제 등을 들어 중국을 압박했고 일부에서는 올림픽 보이콧 여론이 일기도 했었다.
시 부주석은 이에 대해 “세계는 넓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며 “여러 새가 함께 있는 새장 속에서 한 마리 새가 시끄럽게 떠든다고 해서, 그 새를 들어내 버린다면 새장에는 활기가 사라진다”며 공존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하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 방향이 정해지면 그저 우리의 길을 갈 뿐이다”라며 리더로서의 굳은 심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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