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 조용성 특파원) G2로 부상한 중국의 환율, 금리정책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민감한 양상을 띄고 있다. 국제여론에 따라 위안화를 절상하면 중국산업의 근간인 노동집약적 기업들이 경영난에 빠지고 그렇다고 서방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 마냥 모르쇠로 버틸수만도 없다. 환율정책과 관련해서는 무섭게 치솟는 물가도 고려해야한다.
금리정책에도 고난도의 판단이 요구된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에 800조원의 돈을 푸는 등 확장정책을 써온데다 지난해 미국의 양적완화정책에 맞물리면서 혹독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물가를 잡아야 하지만, 급격한 금리인상은 성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2010년 12월 열린 경제공작회의에서 발표된 “적극적이면서 안정적이고, 신중하면서 유연한 거시정책을 펼 것”이라는 애매모호한 정책방향은 이 같은 중국정부의 어려운 입장을 대변한다.
하지만 중국은 그동안 큰 과오없이 성장과 안정 등 두마리 토끼를 잡아왔다. 이 같은 경제성과의 핵심에는 ‘초특급 조타수’ 왕치산(王岐山) 부총리가 자리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현재 중국의 금융정책과 무역정책 등을 관장하고 있는 왕치산 부총리는 2012년 10월에 열릴 17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한 이후 이듬해 3월에 국무원 상임부총리로 선출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차기 상임부총리 유력
현재 왕치산은 공산당 정치국위원이자 국무원 부총리다. 중국 공산당의 실질적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정치국 상무위원회.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비롯해 9명으로 구성되는 상무위원회는 매주 한번씩 회의를 가지고 국가의 주요정책을 결정한다. 이보다 한 단계 낮은 의사결정기구가 정치국이며 상무위원 9명과 16명의 정치국위원으로 구성된다. 능력을 검증받았으며 그동안 성과가 뚜렷한 왕치산은 상무위원으로의 승진이 확실시되고 있다.
또한 국무원에서는 현재 리커창(李克强) 부총리가 맡고 있는 상임부총리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중국 국무원은 원자바오 총리 휘하에 네명의 부총리가 있다. 현재 왕치산은 네명중 가장 서열이 낮은 부총리다.
그의 능력이나 경험, 업적으로 볼 때 부총리를 넘어 총리에 올라서기에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리커창보다 7살 많은 연령과 시진핑(習近平)과 같은 태자당이라는 점이 약점으로 작용했다. 중국의 투톱인 국가주석과 총리는 10년 임기를 채울 만큼 젊어야 한다는 게 공산당의 방침이다. 실제 중국에는 고위공직자 연령제한이 있다. 또한 중국의 투톱인 국가주석과 총리를 시진핑과 왕치산 등 태자당으로만 채우기에는 정치적 부담감이 크다는 분석이다.
또한 시진핑의 후원자로 쩡칭홍(曾慶紅) 전 부주석이 있었고, 리커창의 후원자로 후진타오 주석이 있었지만, 왕치산을 밀고 있는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의 영향력은 그들에 미치지 못한다. 특히 현재 중국의 정치역학상 가장 큰 세력을 지니고 있는 공청단파의 대표격인 리커창을 밀어내기에는 왕치산의 세력이 부족하게 여겨질 수 있다.
2008년과 2009년에 왕치산이 리커창을 제치고 차기 총리에 올라설 것이라는 소문이 베이징정가에 퍼졌지만, 공산당 지도부가 2010년 초 ‘차기 총리 리커창’에 대한 신임을 사실상 재확인한 것도 이와 같은 정치적 배경에서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는 그의 장인인 야오이린(姚依林)이 과거 상임부총리로서 경제분야에 어두웠던 리펑(李鵬) 총리를 보좌했던 것과 같이 리커창을 도와 중국 경제를 이끌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리펑 전 총리와 달리 경제학 박사 학위가 있으며 공청단파의 막강한 지원을 받고 있는 리커창 부총리가 과연 왕치산과 원만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갈지, 왕치산의 자신감 넘치며 거침없는 행보를 용인할지, 둘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둘 사이에서 시진핑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는 차기 중국지도부에 대한 관심거리 중 하나다.
◆주룽지 빼닮은 강한 카리스마
왕치산의 과단성 있고 카리스마 있는 행보는 주룽지 전 총리를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건설은행 부행장 시절이던 1990년 왕 부총리는 상하이(上海)에 파견돼 금융산업 발전방안을 발표하면서 당시 상하이시 서기였던 주룽지의 눈에 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93년 국무원 부총리와 인민은행 행장을 겸직하게 된 주 전 총리는 왕치산을 인민은행 부행장으로 전격 영입했다. 두 사람은 금리를 파격 인상하고, 대출을 회수해 21%까지 치솟았던 인플레를 잡았다. 인민은행에서 함께 일을 하면서 주룽지는 자신을 닮은 왕치산을 더욱 마음에 두게 됐다고 한다. 왕치산은 주룽지처럼 외모가 선이 굵으며 결단력이 높고 성격이 과감한 편이다.
그의 결단력은 광둥(廣東)성 부성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에 빛을 발했다. 당시 아시아금융위기의 여파가 광동성을 덮쳤고 왕치산은 구원투수격으로 광동성으로 급파됐다. 그는 광동국제투자신탁공사(GITIC, 당시 중국 2위 투신사)와 광둥성의 홍콩창구역할을 했던 위에하이(粤海)집단 등 지불능력을 상실한 두 곳을 처리해야 했다. 그는 우왕좌왕하던 광둥성 관료들에게 명쾌하면서도 파격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중앙정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필요 없이, 홍콩의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위에하이는 살리되, GITIC는 파산처리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정부신용과 기업신용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럴헤저드를 야기했다며 정부가 국유금융기구를 대신해 채무를 상환해 주는 과거의 방식은 답습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에 GITIC의 해외채권자들은 “100% 채무 전액을 현금으로 보상하라” “중국에 대한 대출을 모조리 중단시키겠다” “중국정부를 상대로 국제재판소에 고소하겠다”며 극렬하게 대응했다.
이에 왕치산은 “고소를 할 테면 해보라. 중국에서 고소한다면 당신들은 결코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해외에서 고소하더라도 나는 언제든 받아줄 용의가 있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GITIC는 왕치산의 방침대로 1999년 최종 파산처리됐다.

◆치열한 기싸움, 대미 카운터파트너
왕치산은 2008년부터 대미 경제협상의 카운터파트너로도 진가를 발휘했다. 그는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를 수시로 만나 환율과 무역장벽에 대한 협상을 벌여왔다. 지난 1월 워싱턴에서의 미중 정상회담 당시 후진타오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과 저녁만찬을 할 때 그는 별도로 가이트너와 비밀협상을 벌였다. 그는 한치 물러섬이 없으면서도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협상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2008년 미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우려와 이해를 동시에 표했다. 그는 당시 “무역으로 일어선 나라며 다민족 문화를 포용하고 있는 미국이 보호무역을 강화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위기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의 이익을 보호해야 하는, 특히 대선을 앞둔 미국의 상황을 이해한다”며 이해와 비판을 동시에 표출했다. 그는 이어 “역사적으로 볼 때 문을 닫으면 그 나라는 쇠퇴한다. 중국은 과거 선진국이었지만 근 1000년 동안의 쇄국주의 끝에 국력이 쇠약해진 경험이 있다”고 에둘러 충고하기도 했다.
왕치산은 미국의 위안화환율 절상압박을 막아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또한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위안화 국제화를 성공시키기 위해 미국의 동의 내지는 최소한의 묵과를 얻어내야 한다.

◆“저우추취, 과연 준비는 돼있는가”
왕치산은 개혁개방의 신봉자이긴 하지만 우선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금융시장 개방에 대해 “준비가 덜됐으니 금융산업에 대한 실력을 한층 더 배양한 후에 서서히 개방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른바 ‘저우추취(走出去)’라고 불리는 중국기업들의 해외기업 인수합병 바람에 대해서도 왕치산은 준비가 됐는지를 돌아봐야 한다는 자세다.
2009년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일정 중 후난(湖南)대표단과의 토론회에 참석한 왕치산은 싼이(三一)중공업의 회장으로부터 “해외기업 인수합병을 위해 당국이 적극적으로 금융지원을 해달라”는 건의를 받았다.
이에 왕치산은 “후난이 마오쩌둥 전 주석의 고향인 만큼 자신감과 호기가 넘치는군요”라고 말을 꺼낸 뒤 “당신은 스스로 외국기업에 대한 관리능력이 있다고 자신합니까. 외국의 기업문화나 노조와의 관계는 분석해 보셨나요. 만약 해당회사의 엔지니어가 사직한다면 후난의 기술공을 파견할 겁니까. 지피지기가 없는 상황에서의 이 같은 자신감은 저를 두렵게 합니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어 그는 “우선 해외기업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이뤄져야 하고, 중앙당의 과학발전관에 부합한지, 그리고 중앙정부의 성장책과 내수부양책 등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를 검토한 후에야 ‘저우추취’는 더욱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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