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아침, 가젤이 눈을 뜬다.
가젤은 잘 알고 있다.
자신이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빠르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아프리카의 아침, 사자가 눈을 뜬다.
사자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이 가장 느린 가젤보다 더 빠르지 않으면… 굶어죽는다는 사실을.
당신이 가젤이든 사자든 그것은 상관이 없다.
해가 뜨면, 당신은 일단 뛰어야 한다.
-아프리카 속담
2011년 11월 12일 일본이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참가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비슷한 시기에 FTA 전선에 뛰어든 한국과 일본. 지금까지의 결과는 한국의 일방적인 리드였다. 2004년 4월 한·칠레 FTA 발효를 시작으로 한국은 2010년 10월 페루와의 FTA까지 파죽지세로 8개 FTA를 타결했고, FTA 상대국은 무려 45개국으로 늘어났다.
반면 2002년 싱가포르와의 FTA 발효로 우리보다 앞섰던 일본의 현재 스코어는 13개 FTA, 15개국에 불과하다. 게다가 한국이 체결한 8개 FTA에는 ASEAN 10개국을 포함하여 EU 27개국, 그리고 아직 비준은 되지 않았지만 미국이 포함돼 있다.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비교가 되지 않는 성적표다.
여기서 잠시 한·중·일 3국의 FTA 레이스를 돌이켜보자. 일본이 2002년 싱가포르와 FTA를 체결하며 ASEAN 10개국에 대한 발판을 구축하고, 말레이시아(2005년), 태국(2007년), 인도네시아(2007년) 등과의 FTA로 아세안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가자 한국과 중국도 즉각 여기에 뛰어들어 중국은 2004년, 한국은 2006년에 아세안 10개국과 FTA(상품협정)를 타결했다.
2004년 한국이 칠레와의 FTA로 남미에 교두보를 마련하자 중국(2005년), 일본(2007년)이 즉시 칠레와 FTA를 체결했고, 중국이 페루(2009년), 코스타리카(2010년)까지 FTA를 확대하자 한국(2010년)과 일본(2011년)도 각각 페루와 FTA를 체결해 이를 견제했다. 아시아지역 시장 선점을 위한 한·중·일의 각축전이 중남미로 확대된 것이다. 한국이 무대를 유럽으로 옮겨 2006년 스위스 등 EFTA 4개국과 FTA를 체결하자, 일본은 스위스와의 양자 FTA(2009년)로 쫓아왔고, 지난해 한·인도 FTA가 발효되자 금년에 인도와 FTA를 발효시켰다.
이렇게 쫓고 쫓기는 숨막히는 레이스에서 한국이 단연 선두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거대경제권, 특히 미국, EU와의 FTA였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5대 교역대상권 중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아세안, EU, 미국과의 FTA를 모두 성사시키고 이제 중국과 일본의 대문을 두드리는 상황이 된 것. 그러나 여기까지가 전부는 아니었다. 한국이 한·미 FTA 국회 비준 문제로 주춤거리는 사이에 이번에는 일본이 지금까지의 열세를 단번에 만회하기 위한 비장의 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TPP 협상 가입 선언을 보는 관전 포인트다.
금년 12월 제네바에서 개최될 예정인 WTO 각료회의에서 2002년 출범 이래 명맥만 유지해온 DDA 협상이 살아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유럽발 경제위기로 위축된 세계 경제가 내년에 회복될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주 하와이에서 개최된 APEC 회의에서는 세계 경제의 G2로 부상한 중국을 견제코자 하는 미국과 이에 동조하는 일본의 TPP 협상 참가 선언으로 아·태지역에서의 합종연횡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물론 일본이 국내의 반대를 극복하고 TPP 협상 가입을 성사시킬지 여부는 미지수다. ASEAN을 중심으로 한 경제통합 움직임에 한·중·일이 가세하고(ASEAN+3), 여기에 인도, 호주, 뉴질랜드(ASEAN+6)가 끼어들면서 복잡해진 아시아지역 통합은 이제 미국과 중국의 대립구도까지 겹쳐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가 가젤이고, 누가 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해가 뜨면 일단 우리는 뛰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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