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한국형 IB는 과연 가능한가
②헤지펀드 출범, 내수형 아닌 글로벌형으로 육성해야
③증권사 해외법인의 나아갈 길
④금융자본의 탐욕, 적절히 제어해야
(아주경제 이성우 기자)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꿈이 첫발을 내딛었다. 지난해 개정된 자본시장법을 통해 자기자본 3조원 이상 토종 대형 증권사들이 글로벌 IB(투자은행) 플레이어의 간판을 내걸면서 본격적인 IB시대의 막을 열었다.
그동안 주식 중개 사업(브로커리지), 자산관리 영역에 머물던 토종 증권사들은 기존에 없던 ▲프라임브로커 서비스 ▲내부 주문 집행 ▲기업신용 공여라는 다양한 업무를 가지게 됐다. 과연 한국형 IB라는 꿈은 실현될 수 있을까.
아주경제는 심층취재를 통해 앞으로 4회에 걸쳐 글로벌 IB시대 우리 기업들과 증권사들의 나아갈 바를 짚어 본다.
지난해 12월 23일 9개 자산운용사의 12개 헤지펀드가 일제히 판매에 돌입하며 본격적인 토종 헤지펀드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이와 함께 증권사들의 프라임브로커 활동도 개시됐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우리투자증권, 현대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자기자본 3조원 이상에 부합하는 5개 대형 증권사들은 저마다 헤지펀드와 프라임브로커 계약을 맺으며 한국형 IB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먼저 국내에서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형 IB시대 원년을 이룰 올해 국내 투자은행들이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우선 한국형 IB만의 발전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로벌시장에서 한국형 IB로서의 제대로 된 역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무턱대고 골드만삭스, JP모간,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은행을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비록 자기자본 3조원으로 규모를 키웠다하더라도 덩치 면에서 비교가 안된다. 100여년이상 자본주의의 역사와 호흡을 같이하며 고비때마다 위기를 같이 극복해 온 글로벌 IB들의 관록과도 싸움이 될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형 IB가 그들이 하는 것을 한꺼번에 흉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먼저 한국에서 잘하고,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에서 잘하고, 그리고 그 다음을 보는 스텝바이스텝(Step-by-step)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예컨대 우리 회사가 자신 있어 하고 잘하는 게 뭔지, 경쟁력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무엇이 또 필요한지 차근차근 파악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골드만삭스처럼 고객 비즈니스와 함께 자기자본 투자를 많이 하면서 리스크를 떠안고 돈을 버는 모델도 있고, UBS와 같이 고객 자산을 관리하면서 수수료를 받는 수익 모델도 있다. 이들 안에서 한국형 IB만의 틈새를 찾아야 한다.
최근 글로벌 IB시장이 재편되고 있다는 점도 한국형 IB에게 주목할 만한 점이다. 지난해 월가 등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대형 거래 5건 중 4건을 소형 M&A 전문회사인 부티크가 중개했다. 그동안 글로벌 대형 IB들이 대형 딜을 도맡다시피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형IB 육성정책이 도입된 후 크게 달라질 금융환경에서는 전문 인력과 특화 사업 부문의 강화가 필수적“이라며“‘트럭’이 당장 ‘스포츠카’가 될 수는 없겠지만 트레이딩 부문에 대한 혁신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글로벌IB를 인수하는 것도 방법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글로벌 IB들의 성장 과정을 한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3대 글로벌 대형IB 중 하나인 모건스탠리는 지난 1997년 소매금융의 강자였던 딘위터디스커버(Dean Witter Discover)를 합병하며 힘을 키웠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합병된 메릴린치 역시 여러 회사를 흡수합병하면서 성장해온 글로벌 IB다. 스위스의 UBS도 지역 은행을 하다가 합병을 통해 글로벌 IB로 성장했다.
결국 글로벌 IB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체 성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적극적인 M&A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IB가 결국은 사람 장사이기 때문에 M&A는 가장 쉽고도 빠른 성장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자본 경험이나 기업상장(IPO) 등의 노하우는 금방 배울 수 있지만, 인재를 육성하고 확충하는 법은 그저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글로벌시장에서 대형IB들의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IB업계의 실적 부진은 그래서 매입 적기라는 시각도 많다. 지난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진 후 바클레이즈가 리먼브라더스 내의 IB부문을 인수해 미국내 7위 대형IB로 성장했다는 점은 참고할 만하다.
글로벌 대형IB를 인수하기에 부담이 있다면 중국이나 홍콩지역 IB를 인수하는 방법도 있다. 이들을 통해 계속 커져 나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교두보로 삼아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다음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세계 금융의 중심지로 단계적으로 뻗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국내에서만이라도 정부가 지분을 가진 증권사를 합병해 대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시장원리로는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는 대형 금융투자회사간 M&A를 정부 주도로 진행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다만 이런 과정에서 본사의 기업 문화가 바뀐다는 점은 각오해야 한다. 글로벌 IB와 경쟁하려면 한국식의 사고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문화가 다르고 성장배경이 다른 각국 인력을 어떻게 버무려 소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노희진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형 IB라는 꿈은 '2~3년 바짝 투자해 3년 후에는 돈 벌자`는 식의 시나리오로는 맞지 않는다"면서 "전 세계 금융회사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은 내다보고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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