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정부가 그전의 정부와는 달리 경제성장보다는 분배 위주의 복지정책에 더 많은 신경을 썼던 것은 사실이다. 김대중 정부가 ‘생산적 복지’를 주장하며 복지정책의 틀을 마련하자 노무현 정부는 ‘참여복지’를 내세우며 양극화 논쟁에 불을 지폈다. 결국 두 정부의 방만한 재정지출로 인해 국민들의 조세부담은 늘어나고 말았다.
현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 정책에도 포퓰리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집권 초기에 친기업, 친성장의 기치를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는 정권 말기에 이르러 서민층의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지자 친서민 정책, 즉 포퓰리즘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2012년 4ㆍ11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각 정당들이 쏟아내고 있는 포퓰리즘 공약들로 ‘취업준비생 월 25만원(4년간 1200만원) 지급’, ‘대학등록금(부담금 기준) 절반 인하’, ‘사병 월급 40만원 인상’, ‘입원진료비 90% 무상 제공’ 등 급조된 공약들이 난무하고 있다.
국가이 장래보다는 대중의 인기에 더 많은 신경을 섰던 역대 정권의 포퓰리즘적 발상들은 정권이 물러난 지금까지 국가경제 발전을 가로막으며 국민의 세금을 갉아먹는 흉물들을 만들어냈다.
◆ IMF에 국가경제권 내준 ‘숫자놀음’
1997년 12월 24일 원ㆍ달러 환율 1964.80원, 1998년 6월 15일 코스피(KOSPI)지수 277.37포인트, 온 국민에게 악몽같은 순간이었다. 국가파산설까지 나돌았다.
1997년 경제위기는 외환보유고가 바닥이 나면서 시작됐다. 1997년 중반부터 극심한 무역적자로 원화가 고평가되어 있다고 판단한 국내외 외환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싼 달러를 마구 사들여 해외로 유출했고, 원화의 달러 환율을 800대 1로 유지하려 했던 김영삼 정부는 가지고 있던 달러를 마구 내놓았다. 그 바람에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당시 정부가 정치적으로 내세웠던 공약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에 지나치게 매달린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800만원 이었는데, 이를 800대 1이라는 환율로 계산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가 된다.
그러나 환율이 1000대 1로 올라갈 경우 국민소득은 8000달러로 떨어진다. 따라서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1997년 말까지 환율을 800대 1로 유지한다면 적어도 임기 동안에는 국민소득을 1만 달러로 유지했다는 선전을 정치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동네 공항으로 전락한 청주국제공항
청주국제공항은 1999년 삼성경제연구소가 실시한 가장 ‘성공적이지 못한 국책사업’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2위를 차지했다.
1997년 4월 문을 연 청주국제공항은 1983년 아웅산 사건 직후 청주가 북한의 장거리포 사정권 밖에 있다는 말에 솔깃한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위치가 정해졌다. 그 후 사업이 진척되지 않고 흐지부지되었다가 1987년 대선 때 충청권 표를 의식한 대권 후보들이 ‘청주국제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워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결국 완공되었다.
전주신공항도 마찬가지다. 당초 2010년까지 미군기지 안에 있는 군산공항을 민항기용으로 활용할 계획이었으나 1996년 총선과 1997년 대선 때 너도나도 공약으로 내세워 1998년에 전주신공항사업을 공항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에 포함시키고 말았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군산에서 전주를 잇는 고속화도로가 완공되면 전주와 군산은 자동차로 자동차로 30분 거리다. 군산공항을 두고 김제(전주신공항 위치)에 공항을 짓는 것은 김포공항 가는 길이 막힌다고 영등포에 공항을 짓는 격”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지역 표 경쟁은 공항으로 가는 동네 공항을 만드는 넌센스를 연출했다.
◆ 교육포퓰리즘의 희생양 ‘이해찬 세대’
‘이해찬 세대’라는 말,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해찬 교육부장관이 재임하던 1998~1999년에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들은 ‘공부 안 해도 대학 간다’는 정책을 믿고 수능보다는 특기ㆍ적성교육에 더 매달렸다. 새정책에 따라 자율학습과 0교시, 보충수업이 사라졌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001년 11월 대입수학능력고사 성적은 역대 최저였다. 학생들은 ‘모두 다 같은 조건’이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재수생과의 경쟁에서 밀리면서 출발점에서부터 크게 뒤처지고 만 것이다.
이에 앞서 1980년 신군부는 이른바 7ㆍ31교육개혁조치를 통해 전격적으로 본고사를 폐지하고 대학 졸업정원제를 도입했다. 복수지원까지 허용한 그해 입시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미달 학과가 속출하면서 낙제점을 받고도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학생이 있는가 하면 실력을 갖추고도 배짱 부족으로 하향 지원해 피해를 본 학생들도 많았다.
두 사례의 문제점은 모두 교육포퓰리즘에서 비롯된 것이다. 과외가 망국병으로 인식되던 시절 정부가 사교육을 근절하고, 공교육을 활성화하겠다는 것 이상으로 국민들에게 호응을 얻는 일도 드물었다.
대중의 인기를 얻는 데만 급급하다 보니 전혀 현실성이 없고 제도적으로 뿌리내릴 수도 없는 정책을 도입하고, 억지 춘향식으로 시행하게 된 것이다.
수험생들만 ‘실험실의 생쥐’요, ‘표본실의 청개구리’로 전락한 게 아니었다. 교육행정에 대한 믿음이 크게 떨어진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국가경쟁력이 약화되었다.
◆ 동남권 신공항, 표 챙기고 정권 말기에 백지화
선심성 공약은 선거가 달아오를수록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다.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당선 만능주의 앞에 공약에 대한 경제성, 실현성 검토는 뒤로 밀리고 만다.
지방공항 건설이 그중 하나다. 지방자치단체장과 대통령선거에서 지역 표를 얻기 위해 사업성 검토 없이 시시때때로 공항을 짓다 보니 전국 15개 공항 중 인천국제공항, 김포ㆍ제주ㆍ김해공항을 제외한 11개 지방공항은 매년 큰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하루 이용 승객보다 공항 직원수가 더 많은 곳이 있는가 하면 활주로가 고추 말리는 마당으로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대표적인 인기성 공항사업 공약으로는 자그마치 10조원이나 들어가는 ‘국제허브공항’인 동남권(영남) 신공항사업을 들 수 있다. 이 역시 정부의 대선공약이었지만 정권 말기가 돼서야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백지화됐다.
사실 동남권(영남) 신공항은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에 검토되었다. 하지만 제4차 국토종합계획안에 반영되지 않다가 16대 대선을 앞 둔 2002년 4월 김해공항 중국민항기 대형 참사사건 이후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고, 국토종합계획 수정안에 포함되었으나 또다시 장기과제로 보류됐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 집권 말기에 국토균형발전론의 일환으로 수용되기에 이른다. ‘영남균형발전’이라는 명분에 합당했고, 충청도의 세종시 건설에 따른 영남권의 반발을 의식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동남권 신공항사업을 현 이명박 정부가 그대로 가져왔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즉흥적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2007년 대통령 후보 시절 대구를 방문했을 때 갑작스런 신공항에 대한 질문에 “적극 추진하겠다”고 덥석 약속 해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선거 캠프 관계자들조차 ‘갑작스런 약속에 당혹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4월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이 사업을 전면 백지화했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가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을 하자마자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지역표심을 노려 사업을 재추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공항건설 재원은 거의 가동되지 않는 양양공항 등 지방공항들을 폐쇄하고 용도변경 후에 팔아서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인기성 공약으로 만들어진 흉물을 부셔서 또 다른 흉물을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