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 ‘우방과의 경제 전쟁’

류 균(방송인, 한독 미디어대학원 초빙교수)

최근 미국 법원이 한국의 삼성에게 애플의 디자인 특허를 침해했다며 10억4934만 달러(한화 약 1조 2000억 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기업 간의 경제전쟁에 미국 시민들로 구성된 같은 동네 배심원들이 자국 기업의 이익을 먼저 챙긴 모양새다. 미국배심원들의 건전한 양식과 재판의 공정성을 인정하기에 앞서 자국의 거대기업인 애플의 손을 너무 쉽게, 그리고 일방적으로 들어 준 평결 결과에 울컥 울화가 치민다.

60~70년대 미국 영화에서 흔히 보던 장면, 점잖은 얼굴로 포장한 백인 배심원들이 흑인들을 무자비하게 짓밟는 평결을 내리던 장면이 연상된다. 물론 이번 평결을 내린 미국의 배심원들이 모두 백인 우월주의자들일리도 없고, 세계적 기업인 삼성이 핍박받는 흑인일 수도 없으니 지나친 억측은 오히려 약자의 피해심리 혹은 열등감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국내 일부 네티즌 가운데는 한국 최대 재벌기업이 미국에서 패소한 것을 고소해 하거나 너무나 당연시 하는 안티 삼성정서를 표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평결이 이른바 미국식 ‘애국 평결’이라고 보는 시각은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 앞선 한국 재판부 판결은 차치하고라도 유럽과 미국 전문가들과 언론들도 이번 배심원 평결에 대해 ‘팔이 안으로 굽은 것’이라며 냉철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번 평결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인 ‘둥근 모서리 사각형’ 디자인을 놓고 미국의 한 IT웹진은 ‘네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만든 회사가 다른 회사들의 네 바퀴 자동차 개발을 막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적인 글을 올렸다. 또 영국과 네덜란드 등 유럽 법원들은 미국의 결과와는 다르게 삼성이 애플의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이미 판결했었다.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이고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라고 중국의 마오저뚱(毛澤東)은 이야기한 적이 있다. 국제정치 갈등과 세계 경제시장 경쟁은 바로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다. 미국의 거대기업(그냥 미국이라고 해도 상관없다)과 한국의 대표기업(혹은 한국)이 생사를 건 경제대전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배심원들은 스티브 잡스의 유지를 받들어 한국의 삼성을 일패도지(一敗塗地)시키려는 저격수 역할을 기꺼이 자임하고 나섰던 것이다.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본 천황의 사과 요구에 대한 앙갚음으로 한국에 대한 통화스와프 축소와 한국 국채 매입 중단 , 또는 보류 카드를 들고 나왔다. 속 좁은 일본식 대응이지만 이 것 또한 하나의 전쟁이다 . 한·미간 경제 전쟁이 기업 간 전투로 시작 된 반면 한·일 간 정치 갈등은 두 나라 수뇌가 바로 치고 받기에 나서 확전의 우려도 크다. 독도문제에 대해, 더 나아가 한일 관계 전반에 대해 일본이 지금까지 벌여 온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분노를 응축한 국가에너지를 지금 이런 식의 대응으로 풀어 버리는 것은 시기에 맞지 않다. 게다가 방법도 즉흥적이어서 국내에서도 포퓰리즘 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판이다.

폐일언하고 한국은 지금 선진국 문턱에서 비싼 대가를 치르며, 왕년의 혈맹과 우방을 적으로 혹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힘겨운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장수의 잘못도 크고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한 소홀이 여기저기에서 눈에 띈다. 하지만 어쩌랴. 역사 속에서 경제 전쟁에 지면 장롱속의 금을 들고 나왔고 강대국이 쳐들어오면 의병, 승병들이 일어나 나라를 지킨 것이 어디 한 두 번 이었는가 . 바라건대 다음 세대에게는 확실한 선진 한국을 물려주기 위해 지혜와 용기로 이 전쟁에서 이기도록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떨치고 일어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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