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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신입사원 하계 수련대회에 참석한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가운데) 등 경영진이 직원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
계기가 있었다. 6·25전쟁 당시 서울에서 북한군에 전재산을 몰수당하고 구사일생으로 대구에 돌아온 호암은 뜻밖의 곳에서 재기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게 된다. 서울에서 벌인 사업에 매진하느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대구 조선양조장 임직원들이 3억원의 자금을 마련해 호암에게 전해준 것이다.
이때부터 호암은 '의심가는 사람에게는 일을 맡기지 말고, 일단 일을 맡긴 사람은 의심하지 말라(疑人不用, 用人不疑)'는 중국의 고사를 인사 원칙으로 삼게 된다. 삼성은 지난 1957년 국내 기업 최초로 공개채용 제도를 도입하는 등 '인재제일' 경영문화를 고수해 왔다.
호암의 철학은 이건희 회장에게로 고스란히 전승됐다. 이 회장은 1993년 "우수한 사람 한 명이 천 명, 만 명을 먹여 살린다"며 우수인재 확보에 기업의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이 추구하는 인재상은 △열정과 몰입으로 미래에 도전하는 인재 △학습과 창의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인재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협업하는 인재 등이다. 이 같은 인재로 육성하기 위해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그룹 입문교육'을 진행한다. 삼성인의 가치와 정신을 이해하고,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며, 글로벌 비즈니스를 수행하기 위한 필수 역량을 배양하는 과정이다.
이와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지역전문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현지 관습과 문화에 정통한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경영자를 양성하기 위한 제도로, 도입 초기에는 이 회장이 직접 챙겼을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다. 이밖에도 이공계 인력의 경영능력 배양을 위한 삼성 MBA 제도와 차장 및 부장 승진자들의 리더십 함양을 위한 승격자 교육과정 등 다양한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회장은 호암의 정신은 이어받되 자신만의 고유한 인재경영 철학을 완성했다. 이 회장만의 용병술은 '순혈주의 타파'였다. 이 회장 취임 전까지 삼성은 초창기 인사와 공채 출신들을 중용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외부 인사들을 중용했다. 경력직원 출신인 현명관 삼성물산 상임고문은 1993년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후 삼성 비서실장을 맡아 이 회장을 보필했다.
그룹의 작은 일까지도 직접 챙겼던 호암과 달리 이 회장은 계열사 경영진에 대한 간섭을 최소화했다. '전문경영인 제도'를 최대한 활용한 것. 이 회장은 계열사간 사업을 조절하고 그룹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역할에만 충실했다.
실패를 질책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독려하는 기업문화도 이 회장이 만들었다. 이 같은 변화들로 인해 삼성에서는 무수히 많은 스타 CEO들이 탄생하게 된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책임연구원이었던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은 1992년 삼성에 입사한 뒤 '메모리 반도체의 집적도는 1년에 2배씩 늘어난다'는 '황의 법칙'을 발표하며 반도체 사업의 성공을 견인했다.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은 한국이 IT 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큰 기여를 한 뒤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하기도 했다. 삼성을 글로벌 기업으로 이끈 윤종영 전 삼성전자 부회장은 공채 출신을 대표하는 인재이며, '미스터 애니콜'로 불리는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도 각각 완성제품과 부품 분야에서 최고의 실적을 기록한 경영자로 기억되고 있다.
삼성이 국내를 넘어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지금도 이 회장의 인재 사랑은 여전하다. 이 회장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될 수 있으면 질 높은 사람을 더 많이 쓰고 더 적극적으로 젊은 사람을 뽑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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